상우가 이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최영도  (Homepage) 2006-09-26(화) 15:20:06, 6649

선생님, 서상우 소식 들었습니까? 왜, 상우가 어찌 됐나? 예,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답니다. 어제 새벽 서면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택시에 받혀 백병원에 입원중이랍니다. 그런데 상태가 심각하답니다. 어느 정도라고 하던데? 뇌사 직전 상태인 코마라고 합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살아있기는 한데 전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보름쯤 지나 병원을 찾아보니 아무 감각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그냥 식물인간 그 자체였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손을 잡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대로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살아서 본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만 지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지금 거두어 가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기도 아닌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상우는 제 교직 생활 첫 학교인 사하중학교 때 제자입니다. 제가 상우의 담임을 맡은 적은 없었지만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예의가 발랐던 상우라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던 학생 이었습니다. 혜광고를 거쳐 부산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생활한 관계로 영어와 일어는 생활의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회화가 가능했고, 불어로는 조선호텔에서 국제회의를 진행할 정도의 어학 실력을 갖춘 능력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학 실력뿐만 아니라 깔끔한 매너와 순간적 재치 그리고 국제적 감각까지 갖춰 미래 우리 사회의 지도자감이라는 믿음을 갖게 할 정도로 커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인 조흥은행에 입사하여 프랑스 파견 근무 및 서울과 부산본부에서 근무할 만큼 인정받는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모르게 술자리를 같이 해보면 옛날과는 달리 맥주 한 두병에 횡설수설하기 시작하더군요. 술 매너 좋기로 소문났던 상우가 갑자기 술만 먹으면 인사불성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횟수와 정도가 심각해져 갔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장난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차츰 증세가 심해져서 개인적으로 나무라기를 몇 차례나 하였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혼자 불러 나무라다 안 되면 부부를 같이 불러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상태는 그냥 술주정 정도를 넘어섰으며 지금부터라도 고치려면 먼저 병으로 인식하고 치료를 받아야할 것이라고 얘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병원에 다녀왔냐고 물어보면 다녀오지 않았다는 대답만 듣곤 했습니다. 본인이 병원을 전혀 가지 않아 할 수 없이 제가 아는 병원에 가서 제 증세가 아닌 상우의 증세를 얘기하고 제 이름으로 처방을 받아 한달분의 약을 지어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뒤에 만나 확인해 보면 약을 먹지 않고 버렸다더군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세가 심해져 부부를 다시 불러 또 약을 전해 주었습니다. 제발 병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아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했지만, 도리어 만남의 기회만 줄어들고 한번씩 연락이 올 때면 밤늦게 술에 취한 채 알아 듣지 못할 말만 하곤 했습니다. 결국 직장생활도 할 수 없을 만큼 증세가 심해져 명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후 몇 번 치료를 위해 격리된 생활을 해도 단시간에 치료될 정도가 아니라 큰 차도가 없는 듯 했습니다. 증세가 심해지며 만남도 줄어들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던 중 작년 12월 초순 경 학교에 한번 찾아왔었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하였습니다.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와 불안해하며 내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선생님, 내일부터 새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험회사인데 당분간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육만 받게 됩니다. 이제 진짜 술 끊고 새 출발하려고 선생님께 약속하러 왔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이번에는 정말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안 되면 죽어버릴 작정입니다. 선생님 진짜 한 번 지켜봐 주십시오. 그래, 이번에는 진짜 한 번 해보자! 매일 아침 5시 40분 쯤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너 폰으로 전화해서 목소리 확인하고 출발 하마.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너도 내게 전화 하려무나. 다음날부터 서로 확인 전화를 하며 하루를 열고 닫았다. 그렇게 한지 사일 째 밤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내가 상우 폰으로 전화를 해보니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화상으로 한참 나무라고 전화를 끊고 나니 잠이 오질 않는다. 다음날 아침 전화가 불통이다. 낮에 해보니 여자가 받아 경찰이라고 했다. 분실 신고 된 폰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창훈이로부터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전혀 깨어나지 못할 것 같던 상우가 기적적으로 일부 의식을 회복했다. 지금 상우의 나이는  마흔이다. 그런데 스물아홉 살 때까지의 기억을 회복한 상태라고 한다. 11년 정도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누워있는 것이다. 아마 상우가 아직 할일이 남았나 보다 불편한 몸으로나마   자기처럼 술로 인해 시간과 영혼을 잃어가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잠에서 깨어 났나보다. 상우가 완전히 깨어나 이 땅의 알콜 중독자와 그 가족을 위해 이 페이지를 장식할 그날을 기다리며 그동안은 우리가 이 페이지를 적어 보려합니다. 이곳은 당분간 상우의 글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글 자리입니다. 술로 인한 자신의 아픈 상처도 좋습니다. 가족의 아픔도 좋습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의 전문적인 글이면 더 좋겠습니다. 이 자리가 상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자리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간과 영혼을 지키는 자리가 되기를 빌면서.......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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