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의 장기비전을 만들자 송성수  (Homepage) 2012-03-15(목) 12:34:33, 3386

2012년 3월 13일 부로 대덕넷(www.hellodd.com)에 실린 글입니다. ------------------------------------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2년에는 과학의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발간되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그것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유행시키면서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일대 혁신을 가져 왔으며, <침묵의 봄>은 DDT의 폐해를 고발하면서 과학기술의 역기능을 전면적으로 부각시켰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 해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고 이를 매개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의 국면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도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 어떤 맥락에서 수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그 계획이 개발도상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작성된 과학기술에 대한 종합계획이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5년 간격으로 계속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종합계획이 만들어졌다.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1966-1971),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과학기술부문계획(1982-1986), 과학기술혁신 5개년 계획(1997-2002), 과학기술기본계획(2002-2006)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2002년 이후에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의 체제가 구축되었고 최근에는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이 1996년부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는 6년 정도 늦은 셈이다. 이와 같은 5년 단위의 중기계획 이외에 10년 이상의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계획이 세 차례에 걸쳐 수립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1967-1986),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1987-2000),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이 그것이다.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은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직후에 향후 20년 동안 추진할 과학기술정책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은 첨단기술의 부상과 선진국의 견제라는 상황 속에서 자주적 과학기술능력을 확보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은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중심국가의 일원으로 부상하기 위해 과학기술시스템을 어떤 식으로 가져갈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세 계획의 세부적인 내용에도 다시 새겨 볼 만한 것들이 제법 있다.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초, 응용, 개발의 비중을 어떻게 설정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으며, 나중에 대덕연구단지로 현실화된 연구학원도시의 조성에 대해서 선구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은 경제성, 기반성, 필수성, 가능성, 공공성, 미래성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중점추진분야의 도출하고 있으며, 민간부문의 연구개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기술개발지원제도를 개선·강화하는 데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은 국가혁신시스템(NIS)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채택하는 가운데 이전의 계획과 달리 남북 과학기술협력의 증진, 여성 과학기술인력의 양성과 활용, 새로운 연구개발문화의 조성, 과학기술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응 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상의 세 계획이 각각 1968년, 1986년, 1999년에 수립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2012년 정도가 새로운 과학기술 장기비전을 수립하는 데 적당한 시기로 보인다. 과학기술 장기비전이 필요한 것은 단순히 시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에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거버넌스, 창의적 과학기술인력의 수급,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과학기술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새로운 정책과제를 추가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국가혁신시스템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 장기비전을 수립하는 절차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전문가를 결집시키고 공청회와 같은 검증절차는 밟는 것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현장 과학기술자들과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실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비전에는 속전속결이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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