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 송성수  (Homepage) 2010-10-28(목) 15:49:43, 3652

기아자동차 사외보 2010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을 보완하여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독해 보시길 ... -------------------------------- 사람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 송성수(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수, 과학기술학) [편집자 주]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사는 존재인 사람, 도구를 만들어 쓰는 데서 기술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사회적 배경이 함께 녹아들어 필요에 의해 탄생한 기술의 진화와 기술과 인간의 관계, 인류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발전할 향후 기술 세계에 대해 조망해 본다. 기술은 인류의 삶에 공기 같은 존재 인류의 문명은 세 차례의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유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이러한 변화를 제1물결, 제2물결, 제3물결로 개념화했다. 여기서 제1물결은 농업사회, 제2물결은 산업사회, 제3물결은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류 문명의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결부되어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도구가 주를 이루었다면, 산업사회에서는 기계가 이를 대체하였고,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나 생명공학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농업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 예컨대 그들은 날씨가 좋을지 나쁠지, 가뭄이나 홍수가 있을지, 해충이나 역병이 돌게 될지 등에 대해 걱정한다. 산업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 과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선조에 비하면 그런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오히려 그들이 더욱 의존하는 것은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다. 예를 들어, 빵 한 조각도 트랙터, 화학비료, 철도, 롤러, 제빵기계, 자동차 등과 같은 기술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농부, 창고업자, 제분업체, 제빵업체, 슈퍼마켓 등과 같은 사람이나 조직이 결부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욱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존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의존성은 줄어든 대신 기술에 대한 의존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날 기술은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기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기술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컴퓨터로 일을 하고, 텔레비전으로 여가를 보내는 것 등에는 모두 기술이 배여 있다. 이처럼 오늘날 기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지만 우리는 기술의 중요성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가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기술의 세계 다른 한편으로 기술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황우석 사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광우병 파동 등과 같은 논쟁은 대부분 기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기술은 단순히 우리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풀어가야 할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이 빈번해지는 것과 기술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논쟁적이라는 것 자체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세기의 기술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이 변천해 온 모습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만 해도 기술이 풍요의 원천이자 진보의 상징으로 찬양되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면 전쟁무기와 환경오염을 매개로 기술의 역기능이 본격적으로 비판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기술의 역기능에 대한 인식도 1960년대에는 주로 사후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최근의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을 둘러싼 논쟁은 기술의 경로가 가시화되기 전에 이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기술적 능력과 사회조절능력의 조화를 달성하는 것이 인류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는 관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인간의 태도와 능력에 달린 미래의 기술문명 기술의 발전이 가속될 것인지 아니면 감속될 것인지를 하나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사회의 조절능력이 성숙될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다른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기술적 능력과 사회조절능력이 동시에 고도화되는 “디지토피아” 시나리오, 사회조절능력이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마겟돈” 시나리오, 기술의 발전을 제어하면서 기존의 기술로 안정적 세계를 유지하는 “식물원” 시나리오, 기술의 발전이 정체되고 분쟁과 갈등이 심화되는 “긴 겨울”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하나가 모든 시기와 모든 지역에서 우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은 실현되기 어렵다. 오히려 네 가지 시나리오가 단계적으로 실현되거나 지역별로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현실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겟돈이나 식물원의 단계를 거쳐 디지토피아로 갈 수도 있고, 선진국의 중심부에서는 디지토피아가 구현되지만 제3세계의 저개발 지역은 긴 겨울에 머물 수도 있다. 세계적 경쟁 추세 속에서 기술의 발전속도를 완전히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사회조절능력의 성숙을 통해 점진적으로 디지토피아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인지도 모른다.   기술적 능력과 사회조절능력을 조화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는 과학기술자와 일반 시민의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기술자는 연구개발활동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서 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차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일반 시민은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나 반대와 같은 극단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세련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 미래의 기술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기술문명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술과 관련된 이슈를 투명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인간의 태도와 능력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인간의 태도와 능력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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