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것과 잊혀지는 것 송성수  (Homepage) 2009-12-14(월) 10:15:10, 3495

이번 주 금요일(12월 18일)에 부산일보 과학칼럼에 게재될 글입니다. 이것으로 부산일보 과학칼럼을 마치게 됩니다. 아듀, 2009년! ---------------- 올해는 과학에 대한 시선이 남다른 한 해였다.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었고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한 지 400주년이 되었다. 이러한 두 사건은 과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기에 매우 좋은 소재로 작용했다. 서점을 둘러보라. 그러면 진화론이나 천문학에 관한 책자들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한 명의 과학자를 가지고도 여러 행사를 만든다. 예를 들어 뉴턴을 보자. 그는 1642년에 태어나 1727년에 죽었고 1687년에는 <프린키피아>를, 1704년에는 <광학>을 발간했다. 이를 활용하여 100주년, 200주년, 300주년 등을 적용하면 30년 내외의 간격으로 뉴턴과 관련된 행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사를 매개로 뉴턴에 대한 연구가 더욱 세련화되고 일반인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다윈에 대한 행사가 참으로 많이 열렸다. 다윈에 관한 학술대회만 해도 10번은 넘게 개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과학적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거의 처음 가져본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윈의 진화론이 매우 풍부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다윈의 진화론만 가지고도 지속적인 토론을 벌일 만큼 우리나라 학계의 내공이 쌓였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다윈은 널리 기억되었지만 다른 과학자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 과학자는 올해로 사망 50주년을 맞이한 우장춘이다. 다윈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종의 기원을 밝혔다면 우장춘은 종의 합성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였다. 우장춘도 과학사에 중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50주년 행사는 부산에서 조촐하게 열렸을 뿐이다. 협소한 민족주의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과학자가 서양 과학자에 비해 너무 야박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양에서 발생한 사건도 주목받지 못한 것이 제법 있다. 2009년은 물리학자 출신의 작가인 스노우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두 문화 현상에 대한 강연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고, 과학의 오용에 대한 문제를 선구적으로 제기했던 우려하는 과학자동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이 결성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스리마일 섬 사고가 발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행사나 보도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과학과 인문학의 대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기술의 위험과 안전 등에 관한 화두가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러한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토론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들은 기억되고 다른 것들은 망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건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잊혀지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 중에 무엇을 불러내는가 하는 것은 철저히 현재의 몫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는 주체는 자신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삼성전자는 매출액과 순이익에서 화려한 성과를 보이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벌인 바 있다. 그밖에 올해에 발생한 과학에 관한 사건 중에 기억될 만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2009년 노벨과학상에서는 여성 수상자가 무려 3명이나 나왔다. 20세기의 100년 동안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여성이 모두 10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약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대대적인 관심 속에 이루어졌던 나로 호 발사가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 속에 사실상의 실패로 끝났다. 만약 나로 호가 조만간 다시 발사되어 성공을 거둔다면 2009년은 그 씨앗을 뿌린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09년과 관련된 과학적 사건들을 다시 새기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본다. 그 동안 과학칼럼을 사랑해 주신 독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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