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우기에 얽힌 오해 송성수  (Homepage) 2009-05-20(수) 11:59:48, 4160

이번 주 금요일(5월 22일)에 부산일보 과학칼럼에 게재될 글입니다. ---------------- 매년 5월 19일은 발명의 날이다. 발명의 날은 1957년에 상공부 특허국(현재의 특허청)이 제정하였다. 발명의 날의 유래는 1442년(세종 24년) 5월 19일에 측우기가 만들어져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서양에서는 1639년에 이탈리아 과학자인 카스텔리(B. Castelli)가 우량계를 처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측우기는 서양의 우량계보다 약 200년 앞서 발명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20세기 초반에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을 역임했던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유지(和田雄治)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이어 최남선은 1931년에 발간된 <조선역사>에서 측우기를 첨성대, 금속활자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거론하였다. 그런데 일부 중국 학자들은 측우기가 중국에서 만들어 조선에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현존하는 측우대(측우기의 받침대)에 건륭경인오월조(乾隆庚寅五月造)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건륭 경인은 중국 청나라 때의 연호로 1770년을 가리킨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별도의 연호를 만들지 않고 중국의 연호를 따라 썼던 것이지 중국에서 측우기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까닭이 없는 중국인들이 생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측우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는 반면, 중국의 책에서는 측우기와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측우기에 대한 오해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측우기를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과학사학자들이 측우기가 장영실의 발명품이라고 언급한 적은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측우기 하면 장영실을 떠 올린다. 실제로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장영실의 동상은 측우기 모형과 함께 건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측우기를 만든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라는 것이 설득력 있는 견해이다. 장영실이 측우기와 관련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는 반면, <세종실록>에는 1441년 4월에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측우기에 관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과학기술적 차원에서 보면 측우기는 비교적 간단한 기구에 해당한다. 장영실과 같이 전문적인 과학기술자가 아니더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문종이 측우기를 실험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장영실을 흠모한다면, 측우기가 아니라 자격루에 주목해야 한다. 1434년에 제작된 자격루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로서 기계시계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기묘한 장치이다. 따라서 측우기의 창제자가 문종이라고 해서 과학기술자로서 장영실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측우기의 의미는 과학기술적 차원보다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접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해석이 약간 엇갈린다. 흔히 측우기가 제작된 배경으로는 세종이 농정을 쇄신하여 백성을 배불리 먹이려는 의도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측우기로 강우량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농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세종이 하늘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나라를 열심히 다스린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측우기에 주목했다는 보완적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당시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그야말로 하늘의 뜻이 담긴 천문(天文) 현상에 해당하였고, 훌륭한 임금이라면 천문 현상을 자세히 살피는 일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유산에도 숱한 오해와 해석이 배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발명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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