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의 아버지, 이충구 송성수  (Homepage) 2024-03-18(월) 15:00:56, 39279

이충구(李忠九)는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개발의 산 증인이다. 그는 1969년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후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2년 최고기술경영자(CTO)로 퇴직할 때까지 포니에서 시작하여 엑셀,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에쿠스 등 34종의 신차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항상 솔루션은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충구는 ‘포니의 아버지’, ‘한국 자동차의 마에스트로’ 등으로 불리고 있다. 고유모델의 개발에 도전하다 이충구는 1945년 3월 13일에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골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기계를 다루는 일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폭격을 맞자 아버지는 방앗간을 복구하면서 기계를 수리했는데, 이충구는 그것을 신기하게 보면서 과학자를 장래 희망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학에 진학한 형과 누나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공부했다. 1963년 3월에 이충구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공업교육학과 자동차공학 전공 1기로 입학했다. 그러나 당시의 실험실에는 실습을 할 수 있는 장비가 거의 없었다. 어디선가 기증받은 낡은 지게차 1대가 고작이었다. 지게차를 서로 몰아보려고 안달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수가 자동변속기 하나를 더 구해왔다고 한다. 변변한 전공 서적도 없어서 청계천 중고 책방을 뒤져 미군의 차량 정비 매뉴얼을 구해 읽었다. 이충구는 1967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후 ROTC 장교로 복무했다. 수송병과의 정비 담당 장교를 맡으면서 차량의 운전과 정비에 관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졸업 후 ROTC로 입대해 수송병과에 배치됐습니다. 군대에는 민간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차종과 정비 기술이 있었어요. 대학서 해소하지 못한 갈증을 군에서 풀었죠”(≪조선일보≫, 2024. 1. 11). 이충구는 1969년 6월 19일에 ROTC 공채 1기로 현대자동차주식회사에 입사했다. 현대자동차의 첫 인상에 대해 이충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울산시 양정동에 있는 공장은 말이 조립공장이지 벽만 둘러쳐져 있는 창고를 지어놓은 셈이었다.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등 SKD 상태로 부품을 수입해 와서 컨베이어 라인도 없이 조립하던 시설이었고, 공장 건물은 비와 바람만 막은 정도였다”(≪오토저널≫ 31-2 (2009), 59쪽). 여기서 SKD(semi-knockdown)는 부분적으로 분해된 부품을 구입하여 조립하는 방식을 뜻한다. 당시에 현대자동차는 미국 포드자동차가 개발한 코티나를 조립하는 업체였다. 이충구는 품질검사과에 배속되어 사전에 배부된 프로세스시트 대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일을 맡았다. 그는 3년 동안 공장생활을 한 후 서울 본사의 기술정비부로 옮겨 1년 6개월 동안 근무했다. 기술정비부 시절에는 워크숍 매뉴얼과 검사계획서를 비롯한 포드의 각종 영문 자료를 번역했다. 그것은 선진 자동차업체의 품질관리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970년 12월에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입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현대는 질 좋은 소형차를 생산하여 포드의 판매망을 활용하려고 했지만, 포드는 현대를 부품생산의 하청기지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포드와의 합작계약은 1973년 1월에 파기되었고, 그 때부터 현대는 고유모델 개발이라는 공격적 노선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현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당시의 기술수준으로는 고유모델의 생산이 거의 불가능하며, 설혹 고유모델이 생산되더라도 품질이 보증되지 않아 판매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때마침 한국 정부도 고유모델을 표방한 자동차공업 진흥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공부는 1973년 7월에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안)을 만들어 GM코리아, 현대자동차, 아세아자동차, 기아산업을 대상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에 정부의 방침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기업은 현대자동차였다. 현대의 계획서는 사업의 목적, 사업의 개요, 소요자금 및 조달계획, 생산규모 및 생산계획, 건설공사계획, 한국형 승용차 제작계획 등으로 구성되었다. 1973～1975년, 1976～1977년, 1978～1979년의 세 단계별로 어떤 공장을 건설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은 얼마이며 완성차를 몇 대 생산할 것인지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외국의 설계전문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해 차체 설계를 의뢰하고, 완성차 제작에는 전문분야별로 외국인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문토록 한다는 등의 추진전략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대리 노트에서 시작된 포니 신화 현대자동차는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의 이름으로 ‘포니’를 선택했다. 포니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도입되었다. 현대는 스타일링과 차체설계를 위해 이탈리아의 이탈디자인에 기술용역을 의뢰했으며, 엔진, 변속기, 후차축 등 동력발생 및 동력전달 장치, 플랫폼의 설계도면(섀시레이아웃), 엔진제조를 위한 주물제조기술을 일본의 미쓰비시자동차에서 도입했다. 그밖에 현가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엔진마운트, 냉각 및 배기시스템 등 주요 섀시부품들은 현대가 미쓰비시의 랜서 차종을 분해하거나 도입한 부품을 일일이 측정하여 도면으로 만들었다. 부족한 자료는 기존의 코티나, 뉴코티나 등 포드 사양을 응용하되 국내 기술수준을 감안하여 약간 수정하는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고유모델의 개발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문제는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는 이탈디자인과의 계약을 바탕으로 소위 ‘5인의 특공대’로 불린 기술진을 파견했다. 1973년 10월에는 정주화 차장이 토리노로 갔고, 같은 해 11월에는 이승복, 박광남 과장, 이충구, 김동우 대리가 추가로 합류했고, 3개월 후에는 이승복 과장이 허명래 대리로 교체되었다. 당시 이충구는 신혼 8개월 만에 이탈리아로 파견되었다. 아내가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은 한 줄짜리 텔렉스로 통보받았고, 귀국 길에 김포공항에서 6개월 된 딸을 처음 안아볼 수 있었다. 현대의 특공대는 약 1년 동안 이탈디자인 관계자들의 설계 작업에 참여하면서 어깨 너머로 설계기술을 익혔다. 낮에는 현지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가 밤에는 이를 기록하고 토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고, 우리는 자동차 도면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맨땅에 헤딩’이었죠. 우리는 이탈리아 장인들이 설계․디자인을 하는 걸 종일 들여다보면서 닥치는 대로 배우고, 수없이 따라 그리고 적었습니다. 말이 안 통해 몇 번씩 묻고, 밤새워 사전을 뒤져가며 기록했어요”(≪조선일보≫, 2024. 1. 11). 당시에 이탈디자인에서 이루어진 기술연수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이충구가 주로 맡았다. 그가 작성한 3권의 노트는 훗날 ‘이대리 노트’로 불리면서 현대가 포니를 비롯한 고유모델 승용차를 개발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포니 신화는 이대리 노트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대리 노트에 대해 이충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서로 간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많아 어떤 것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는 데 빨라야 3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물론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그린 것을 그대로 모사해서 보관했다. 나중에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매일 토의를 통해 일지 형태로 정리해 나갔다. 그 작업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해나가는 일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들은 후에 출장보고서를 쓰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자료로 남겨야겠다고 모아둔 것이 후일 우리가 자체적으로 일을 추진할 때 큰 보탬이 된 것이다. 그 자료는 보고서 작성에 그치지 않고 훗날 추가로 우리 팀에 배정된 직원들의 교육 자료로도 활용되었다(≪오토저널≫ 31-4 (2009), 55쪽). 1974년 10월에는 ‘포니쿠페’라는 콘셉트카(concept car)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자동차박람회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75년 12월에는 완제품 포니가 처음 생산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 전 세계적으로는 9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현대자동차 20년사󰡕를 포함한 많은 자료는 한국이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생산한 국가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충구는 한국이 세계 9번째의 고유모델 생산국이며 당시의 자동차 생산량에서 세계 16위를 차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언론은 한국이 세계 16번째의 고유모델 생산국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금도 대부분 자료는 16번째로 인용하고 있지만, 틀린 이야기이다. 고유모델 생산국으로는 9번째가 맞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로서 [생산량이 세계에서] 16번째라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오토저널≫ 31-4 (2009), 56쪽). 포니는 1976년 2월부터 시판되기 시작했다. 판매가는 228만 9천원이었는데, 당시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30평형 분양가가 865만원, 전문직 월급이 10만원 정도였다. 포니는 첫 해에 10,726대가 판매되어 기아의 브리사를 제치고 국내 1위로 올라섰다. 또한 포니는 국내의 단일 차종으로서는 처음으로 1978년 2월에 생산대수 5만대, 같은 해 12월에는 10만대를 돌파하는 기록을 남겼다. 더 나아가 포니는 국산 승용차로는 처음으로 남미와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다. 포니의 수출 대수는 1976년 1,019대에서 1979년 19,204대로, 수출액은 같은 기간에 257만 달러에서 5,655만 달러로 증가했다. 현대는 포니를 통해 엄청난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기아는 1974년에 브리사를 출시하면서 1975년에는 국내 승용차 생산량의 55.5%를 차지했다. 그러나 포니의 출시를 계기로 현대가 국내 자동차업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현대의 생산비중은 포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1976년에 55.5%로 증가했고 1977～1979년에는 계속 60% 이상을 유지했다. 이에 반해 한때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GM코리아는 1977년에 9.7%까지 생산비중이 감소하는 등 국내 자동차 3사 중 승용차를 가장 적게 생산하는 업체로 전락했다. 이충구는 포니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1978년 11월의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산업포장을 받았다. 그는 1978년 4월에 한국자동차기술학회(1983년 1월에 한국자동차공학회로 개칭)가 출범하는 데 힘을 보탰고, 그 학회의 차체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미국에 진출한 액셀 1978년에 들어와 현대자동차는 포니 프로젝트의 후속 사업을 계획했다. 소형차를 개선하는 X카 프로젝트와 중형차를 개발하는 Y카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1979～1980년에는 한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을 맞이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1981년에 들어서야 두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할 수 있었다. Y카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자동차는 1983년 5월에 스텔라를 출시했으며, 스텔라는 88 올림픽의 공식 행사차로 지정된 바 있다. X카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1985년 2월에 엑셀(정식 명칭은 ‘포니엑셀’)이 개발되었는데, 엑셀은 미국에 수출된 최초의 국산 승용차였다. 이충구는 스텔라와 엑셀의 설계 책임을 맡아 두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충구는 1981년 초에 소형설계부 부장으로 부임하면서 X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같은 해 10월에 발표된 X카 프로젝트의 골자는 미쓰비시와의 기술제휴 및 합작투자를 통해 1985년까지 전륜구동형 소형승용차인 엑셀을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된 승용차를 선진국 시장에 대량으로 수출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승용차 보유 대수가 26만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30만대 규모의 X카 프로젝트는 매우 야심찬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X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새로운 기술변화의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륜구동 방식을 폐기하고 전륜구동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했으며, 기존의 프레임도어 대신에 도어 전체를 용접 없이 하나의 패널로 만드는 풀도어 방식을 선택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카뷰레터 방식의 기존 엔진에 외부 정화장치를 부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현대는 특별기술료까지 지불하면서 미쓰비시로부터 전자분사 방식의 초기 형태인 피드백 카뷰레이터(feed-back carburetor, FBC) 엔진을 도입했다. 이충구는 현대자동차 부장 시절의 일화 하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엑셀 자동차 스타일링을 최종 컨펌 받는데, 보통사람보다 손이 유달리 크신 정[주영] 회장께서 자동차 도어 손잡이를 크게 하자고 지시하셨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손잡이 때문에 금형을 다시 제작해야 해 선적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동차는 무게가 중요한데 불필요하게 무게를 늘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정 회장은 도대체 무게가 얼마나 늘어나냐고 물었고, 손잡이 하나당 10그램씩 총 40그램이 늘어가게 된다고 답하였다. 정 회장은 고작 40그램 때문에 회장 지시에 반대하냐고 역정을 내셨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임직원 격려 회식에서 정 회장이 호출하시더니 손수 ‘힘들지’하고 위로를 해주셨고, 한 달 후쯤 [현대]중공업에서 배가 무거워 선체 인수를 거부당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중공업 임직원들에게 무게 줄이는 법에 대한 강의를 지시하기도 하셨다(≪과학기술정책≫ 25-4 (2015), 24-25쪽). 많은 사람들은 정주영을 “이봐, 해봤어?”라며 무모한 일을 밀어붙인 리더십으로 기억하지만, 이충구는 정주영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질문의 귀재였다고 평가한다. “그런 막무가내는 아니었습니다. ‘그건 왜 그렇지?’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끝없이 물어보면서 섬세하게 끌어가셨어요. 그분은 질문의 귀재였습니다. 리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고민하고 물으니, 우리도 진심으로 고민해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책상물림 임원들에겐 호랑이였지만, 현장 기술자들은 극진히 대우했어요. 기술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아셨던 거죠”(≪조선일보≫, 2024. 1. 11). 드디어 1985년 2월에 X카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미국의 배기가스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30만대 공장 준공식이 열렸던 것이다. 이충구는 1985년 2월에 현대자동차 이사로 승진했고, 같은 해 3월에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엑셀의 미국 수출량은 1986년에 16만대, 1987년에 26만대를 넘어섰으며, 당시에 미국 경제지 ≪포춘≫은 엑셀을 ‘히트상품 베스트 10’에 선정하기도 했다. 이충구는 1985년 쏘나타, 1986년 그랜저를 개발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을 이끌다 현대자동차는 1984년 11월에 경기도 용인에 마북리연구소를 신설하면서 연구개발체제를 대폭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마북리연구소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 즉 파워트레인(powertrain)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현대는 엑셀의 미국 시장 진출을 계기로 1986년 5월 현지연구소인 HATCI(Hyundai American Technical Center Inc.)를 설립했다. 이어 1987년 1월에는 제품개발연구소가 승용제품개발연구소와 상용제품개발연구소로 분리됨으로써 현대의 연구개발체제는 마북리연구소, 승용제품개발연구소, 상용제품개발연구소, HATCI의 4원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충구는 1987년에 상무로 승진하면서 승용제품개발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그는 승용제품개발연구소를 이끌면서 스쿠프, 엘란트라, 뉴그랜저 등을 개발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이로써 현대자동차는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의 모든 차종을 고유모델로 구비하게 되었다. 이른바 ‘고유모델 풀 라인업(full line-up) 체제’가 정립되었던 것이다. 이충구는 1991년에 마북리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한국 최초의 독자엔진인 알파엔진의 개발을 마무리하는 작업도 책임졌다. 알파엔진은 1991년에 스쿠프에 처음 적용되었고, 1994년에는 뉴 알파엔진이 개발되어 엑센트에 탑재되었다. 이충구는 1993～1999년에 현대자동차 부사장 겸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냈다. 1994년에는 3․1문화상의 기술부문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한국자동차공학회 회장이 되었다. 그는 1999년에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승진하여 통합연구개발본부장, 상품기획총괄본부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2000년에는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충구는 2001년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으며, 2001～2003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1년에 정주영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에쿠스로 직접 영구차를 제작하여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이충구는 현대자동차 사장 시절에 직원들 사이에서 ‘타이거(호랑이)’로 불렸는데,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풀어야만 하는 완벽주의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리더에게 완벽주의는 감점 요인이다. 그러나 리더이기 전에 제품을 만드는 엔지니어라는 생각을 항상 품었다. 엔지니어는 완벽주의로 무장해야 하고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가도 완벽주의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동아사이언스≫, 2019. 12. 20). 이충구는 2002년에 33년 동안이나 근무했던 현대자동차를 떠났다. 2003년에는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부임했고,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가 되었다. 2012～2016년에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지능형자동차 플랫폼센터장, 2014～2019년에는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을 맡았다. 그는 2019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이후에는 베어링 생산업체인 연합시스템의 경영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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