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보일과 홉스의 논쟁 송성수  (Homepage) 2016-03-17(목) 11:01:11, 10379

<국제신문> 2016년 3월 17일 인문학 칼럼입니다. 보일과 홉스의 논쟁 인문학·기초과학 위기, 자신의 틀 안주해 초래 양 분야 서로 대화 노력, 상호 발전을 위한 동력 현존하는 학술단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1660년에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왕립학회이다. 왕립학회 회원(Fellow of the Royal Society)들은 자신의 명함에 FRS를 큼지막하게 적고 다닌다. 그만큼 왕립학회 회원이라는 점이 엄청난 자부심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왕립학회가 설립될 당시에 영국 학계는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논쟁의 당사자는 보일(Robert Boyle)과 홉스(Thomas Hobbes)였다. 보일은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과 그 부피는 서로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이고,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묘사된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년)>으로 유명한 정치학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과학이나 정치학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학문은 철학으로 통했다. 당시의 용어를 빌면, 보일은 자연철학자 혹은 실험철학자였고 홉스는 정치철학자 혹은 사회철학자였다.   두 사람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을까? 논쟁은 보일이 공기펌프를 활용하여 진공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공기펌프를 제대로 제작하기만 하면 똑같은 실험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공기펌프는 실험 결과를 객관화하고 실험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즉, 실험을 성공시킨 것은 주관적인 실험자가 아니라 객관적인 실험기구이며, 실험이 실패한 것은 실험자의 잘못이 아니라 실험기구의 결함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보일이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 보고 양식을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보일의 대표적인 저작인 <회의적인 화학자(Sceptical Chymist, 1661년)>는 네 명의 참여자가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보일은 겸손하게 실험 과정을 설명했으며 실수가 있을 때에는 이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에 따라 대중들은 보일을 균형 잡힌 지식인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은 보일의 실험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보일은 실험을 공적인 자리에서 재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집단적인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제 실험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실험자 개인이 아니라 실험을 목격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특히, 왕립학회를 통한 공인은 대중들이 실험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도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수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대해 홉스는 보일의 공기펌프에서 진정한 진공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홉스는 보일의 공기펌프에 새는 곳이 많으며 그것을 작동시키기도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또한, 홉스에 따르면, 보일은 공기펌프를 계속 개조하여 펌프의 복제를 힘들게 했고 이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보일의 주장을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 나아가 홉스는 공기펌프로 공기를 제거할 때 촛불이 꺼지거나 동물이 죽는 현상을 매우 미세한 입자의 소용돌이 운동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보일과 홉스의 논쟁이 단순히 진공의 존재 여부를 놓고 벌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보일은 원인의 불가지성(不可知性)을 표방한 확률적 지식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동의나 그것을 강제할 절대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철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의견수렴의 광장을 건설하는 것을 갈망했다. 반면, 홉스가 자연철학의 모델로 삼았던 기하학은 모든 사람에게 자명한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행위의 원칙을 제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에 복종함으로써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목표로 삼았다. 두 사람의 상이한 과학관은 서로 다른 사회사상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일과 홉스가 논쟁을 벌였던 17세기만 해도 이과와 문과가 진지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간극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학문이 점차적으로 세분화되면서 20세기에 이르면 학문 분야 사이의 대화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했다. 급기야 1959년에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작가인 스노(Charles Snow)는 인문문화와 과학문화를 ‘두 문화(two cultures)’로 규정하면서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보기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과학자나 열역학 제2법칙을 아는 인문학자는 거의 없었다. 어느 새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혹은 ‘기초과학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스노가 두 문화의 문제를 제기했던 시기와 달리 물리학과 문학은 더 이상 학문의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위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두 분야가 모두 자신의 틀 안에서 안주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순수학문으로서 가치가 있고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소극적 논리를 넘어 과학과 인문학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긴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인문학 전공자와 과학 전공자가 상대방의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있을 것이다. 350년 전에 보일과 홉스가 벌였던 논쟁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지는 것도 이러한 까닭인 듯싶다. 보일과 홉스는 주된 연구 분야는 달랐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과학과 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사상을 전개했던 것이다. ☞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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