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공동체, 과사철 송성수  (Homepage) 2014-01-27(월) 09:44:52, 4567

제가 몸담았던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써 본 글인데, 옛날 대학원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 ------------------------ 그리운 공동체, 과사철 송성수(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나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하 과사철)의 석사 90학번, 박사 93학번이다. 석사 동기로는 손영란, 손향구 선배님, 이관수 선배님, 이미숙 선배님, 이병오, 정인경 선배님이 있고, 박사 동기로는 이관수 선배님과 이문규 선배님이 있다(이상 가나다순). 석사 90학번 7명 중에 6명이 졸업을 했고, 박사 93학번 3명은 모두 졸업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과사철에서 생존율(?)이 매우 우수한 학번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의 자세한 학번은 90321-503과 93321-801인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비밀이 있다. 석사 학번이 3번으로 밀린 이유는 그 흔한 김씨나 박씨 때문이 아니라 두 명의 손씨 덕분이었다. 두 분의 이씨 덕분에 박사 학번은 1번이 되었는데, 두 분이 평생을 두고 애통해 할지도 모르겠다. 과사철 하면 김영식 선생님의 수업을 빼놓을 수 없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과학사통론은 그야 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성수, 이야기 한번 해 보지? 관수는 어떻게 생각하나? 영란이는?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님의 묵직한 목소리는 오늘날 유행하는 말로 하면 돌직구에 다름 아니었다. 이관수 선배님은 매주 목요일이 되면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과학사통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국과학사학계의 대부이신 송상용 선생님께서는 과학혁명 수업을 맡아 주셨고, 종종 댁을 방문할 때마다 넉넉한 인심을 베풀어 주셨다. 박성래 선생님의 한국과학사 수업은 선생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는 자연과학기초론 수업을 통해 참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셨고, 조인래 선생님께서는 과학철학에 대한 그야말로 명강의를 해 주셨다. 당시에는 소장학자였던 김미경 선생님, 임경순 선생님, 김동원 선생님, 정명식 선생님께서도 각각 과학사방법론, 물리학사, 현대과학사, 원전연구 등을 매개로 좋은 가르침을 주셨다. 서양사학과 배영수 선생님의 미국사 수업도 제법 들었는데, 김영식 선생님께 다독을 배웠다면 배영수 선생님께는 정독을 배운 셈이었다. 이인호 선생님(러시아사), 김종현 선생님(산업혁명사), 양동휴 선생님(미국경제사), 홍영남 선생님(사회생물학), 신용하 선생님(한국사회사), 염재호 선생님(과학기술정책)께서도 열정적인 수업을 해 주셨다.           과사철에서 공부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족구이다. 화학관(당시에는 22동) 앞 공터에서 얼마나 족구를 자주 했던지, 지나가던 학부 동기로부터 “너는 족구하러 대학원 갔나?”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문규 선배님과 전용훈 선배님은 프로에 버금가는 족구 선수였고, 김근배 선배님, 모태준 선배님, 오동훈도 날렵한 운동신경을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이병윤 선수가 영입(?)되어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족구 기계 집합!”, “모 강사님, 나이스 슟!”하던 시절이 그립다. 족구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내가 기억하는 과사철의 최고 추억(?)은 손향구 선배님이 족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기브스를 했던 사건이다. 손향구 선배님은 여성의 몸으로 남성에 못지않은 멋진 실력을 뽐냈다.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족구에 몰입(?)하더니 결국은 기브스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기브스한 손향구 선배님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선배님 하숙집까지 모셨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족구 이야기가 더 길어지는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자연과학대학에 소속된 대학원생들 사이에 체육대회가 벌어졌다. 과사철 석사 90학번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 팀은 예선탈락을 예상하고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팀이 우승인가, 준우승인가를 했다. 예선전과 4강전에서 과사철의 밥이 된 팀은 “우리가 왜 졌지?”하면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설프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공격, 상대방의 강슟을 막아내는 집요한 수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소에 다져진 팀워크가 우리 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족구도 열심히 했다. 또 하나 열심히 한 것은 세미나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공화국의 현실을 아파하던 과사철 선배님들과 함께 진보적 과학기술론에 대한 세미나를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당시의 현안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가 논의되다가 나중에는 과학론 분과와 기술론 분과로 나누어 심도 있는 학습을 했다. 이중원 선배님, 홍성욱 선배님, 김근배 선배님, 송위진 선배님이 세미나를 헌신적으로 이끌었는데, 송위진 선배님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세미나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에 어떤 논의를 했을까? 이것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중원 선배님의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인식”과 내가 엮은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원 선배님의 글은 과사철 20주년 기념으로 2004년에 발간된 <인문학으로 과학 읽기>에 실려 있다. “마르크스”도 이제는 간간히 쓰는 말이 되었다. 옛날에는 아주 많이 말하고 꽤 많이 썼었는데 … 지금은 소시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열혈청년이었던 모양이다. 유명한 과학철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포퍼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되어 보지 않는 자는 바보요, 나이 들어서도 사회주의자로 남아 있는 자는 더 바보다.” 그밖에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보니, 석사는 1년 후배지만 나이는 같은 오동훈, 이영완, 이현과 함께 “3총사와 달타냥”이라 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던 일, 석사 논문을 쓴답시고 북미 유학을 가 있던 홍성욱 선배님께 아직도 다 보지 못한 자료의 복사를 부탁했던 일, 김명자 선생님의 후원으로 두산연수원에서 깊디깊은 맥주 맛을 보다가 소위 “열쇠 사건”으로 임경순 선배님께 하극상(?)을 보였던 일, 군대에 있는 동안 김훈기 선배님의 배려로 <과학동아>에 연재를 하면서 아들 귀저기를 마련했던 일 등이 떠오른다. 내친 김에 멋진 후배님들의 이름도 남겨야겠다. 학부 세미나 수제자(?)로 무척이나 똘망똘망한 눈빛을 가졌던 문만용, 같은 하숙집에 있으면서 간간히 고스톱 상납을 해 주었던 이범, 기술사 직계 후배로 황소 같은 성실성과 자존감을 가진 김명진, 우리 과정에서 처음으로 “오빠”라 불러준 박민아, “제 별명이 여자 송성수예요”하고 친밀감을 과시해 준 홍성주 …     이제 과사철이 30년을 맞이한다고 하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다닌 과사철은 공부와 놀이와 고민을 함께 한 공동체였다. 좀 더 진하게(?) 말하자면 과사철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나 할까? … 30대에 연구소 생활을 하고 40대에 대학에 있으면서도 과사철은 늘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져 왔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직후에는 소주 한 잔에 취해 과사철 선배님들께 자주 전화를 드리기도 했다. 이제는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절의 선생님들,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와 동시에 내가 그 시절처럼 잘 살고 있는지 의문도 든다. 끝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에 대한 정의를 옮겨볼까 한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과사철 식구들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기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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