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 다시 생각해 보는 통섭 송성수  (Homepage) 2013-04-16(화) 22:34:11, 3441

부산대에서 발간하는 <부대신문> 4월 8일자에 실린 사설입니다. 학문간 경계를 허물자는 것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재작년에 타개한 스티브 잡스는 과학기술과 예술을 연결시킨 천재로 칭송을 받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올해부터 교양선택의 한 영역으로 융복합 영역이 신설되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의 영문 첫 글자를 딴 STEAM 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는 단어는 ‘통섭(consilience)’이다. 통섭은 유명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에 발간한 책자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실상 윌슨은 모든 학문에 공통적으로 통하는 섭리를 생명과학에서 찾고자 했다. 학문간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제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다양한 학문을 특정 분야로 환원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통섭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휴얼이다. 그는 학문의 성장을 여러 갈래의 냇물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과정에 비유했다. 윌슨이 환원적 통섭(reductive consilience)을 주장했다면, 휴얼은 합류적 통섭(confluent consilience)에 주목한 셈이다. 통섭에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혼성(hybrid), 수렴(convergence), 복합(composition), 융합(fusion) 등이 그것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축전지와 가솔린을 교대로 사용하면서 달리듯이, 한 분야와 다른 분야를 병행해서 탐구하는 것이 혼성에 해당한다. 수렴은 복수의 분야에서 공통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복합의 경우에는 빼빼로 과자와 같이 복수의 재료가 결합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지만 원재료의 속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융합은 산소와 수소가 결합되어 물이 합성되는 것처럼, 복수의 분야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통섭에는 매우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며, 처음부터 복합이나 융합과 같은 높은 수준의 통섭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으로 보인다. 통섭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묵할 필요는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분야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외국을 여행할 때 여권과 비행기표만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행자들은 목적지를 소개한 책자를 보고, 간단한 외국 말을 공부하는 등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기 마련이다. 또한, 외국을 여행하게 되면 다양한 외국 음식을 접하게 된다. 그 중에는 입맛에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외국의 음식을 나름대로 평가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처음부터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른 분야와의 만남도 이와 흡사하다. 나의 지식을 고집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태도가 아니라 낯선 문화를 탐구하려는 여행자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그야말로 종합대학으로 거의 100개에 달하는 학과(부)가 존재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학문의 맛을 볼 수 있는데도, 그러한 시도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아직도 관념적 차원이나 제도적 차원에서 학문간 장벽은 높다. 그러나 미래 사회가 점점 학문간 경계를 허물자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면, 그러한 시도에 동참하는 것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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