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벽이 말하다 송길원  (Homepage) 2022-06-27(월) 07:49:04, 34527

종종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고집센 사람을 향해 ‘벽창호’라 한다. 원래는 벽창우(碧昌牛)였다. 시간이 흘러 벽창호로 바뀌었다. 그 유래가 있다. 벽창우의 벽창이란, 평안북도의 벽동군과 창성군의 첫글자를 따서 부른 이름이다. 두 지방의 소가 유난히 덩치가 크고 성질이 억셌다. 여기에서 고집이 세고 우둔하며 고지식하여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고집불통, 단무지, 독불장군, 빡대가리와 유사한 말이다. 말이 안 통한다고 ‘벽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때 벽은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심한 모욕이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그 사람인데 말이다. 실상 벽은 존재 자체로 수 없는 말을 한다. 여백 자체로 아니면 색으로도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나는 가끔 벽이 우리를 향해 입 좀 닫고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나의 이 철학을 이해한 최광희박사의 논문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이러한 historical wall을 실행하고 있는 좋은 예를 찾자면 건강한 기독교 가정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NGO (사)하이패밀리의 ‘W-스토리’를 예로 들 수 있다. ‘W-스토리’의 건물 벽면 곳곳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진 혹은 조형물들을 전시해 놓고 방문객에게 그 역사와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그 벽들은 그 자체로 기억 벽면(historical wall)이 되어 그 벽면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에게 끝이 없는 풍성한 이야기를 해준다. 때로는 그 벽면 앞에 비치된 원탁에서 벽면에 부착된 한 장의 사진 혹은 조형물을 중심으로 미니 세미나가 펼쳐지기도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작업을 각각의 신앙공동체가 사용하는 교회당 복도에 도입할 때 그 벽면이 공동체의 정체성 내러티브를 제공하며 신앙공동체의 집단기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패밀리의 송길원 대표는 건물에 이야기를 붙였다기보다는 건물 자체를 이야기로 지어 놓았다. 송길원은 말한다. “건물은 벽돌과 돈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지어진다.” 문고리도 건축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본관 2층에 있는 ‘종교개혁 500주년’ 상징문의 경우 들어설 때는 손잡이가 있어도 나갈 때는 손잡이가 없게 했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면서 또한 닫힌 공간”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W-스토리’의 상징적 건물 격인 청란교회의 경우 청록(Blue Green)이라는 색깔에도 중요한 의미를 담았다.”-송길원, 『이야기로 집을 짓다』 (양평: 하이패밀리, 2020), 7, 21, 24, 79. 나는 생각한다. 벽이 드디어 큰 위로를 받았을 거라고. #. 나는 종교개혁가들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면 문앞에 선다.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그들의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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