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우자로 살기위해 열공 중! 송길원  (Homepage) 2013-12-30(월) 08:21:46, 3699

밤이 꽤 늦었다. 집에 들어선다. 벌써 아내는 이불을 푹 덮어쓰고 잠들어 있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 새끼도 사람을 반길 줄 아는데...... 속이 불편해진다. 신혼 때의 정겨운 퇴근길을 떠올려 본다. 부질없다. 무덤덤해진 중년. 거북스런 마음을 누르고 침실로 들어선다. 까치걸음이다.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선다. 수도꼭지도 조심스럽다. 고양이 세수를 한다. 침대를 찾는다. 더듬더듬, 출렁거리는 침대에 아내가 잠을 깰까 봐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새우잠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가 시비를 걸어온다. “사람이 왜 그렇게 무정할 수 있는 거야!” 뜬금없다. “왜 또 아침부터 시비를 걸어?” 아내가 대꾸한다. “사람이 아파 누워있으면 어디 아픈데 없냐고 말이나 걸어보던지, 이마를 한 번 짚어 보기라도 하던지. 당신은 만정이 떨어져!” 이럴 때 밀리면 끝장이다. 나도 역성을 부린다. “그래, 나는 오만정이 떨어진다. 당신 잠 깰까 봐 까치걸음에 고양이 세수에 새우잠을 자고 일어난 나를 보고 뭐, 만정 떨어진다고? 나는 오만정이 떨어진다 그래. 사람 배려는 무시하고.....” “뭐? 배려라고?” “여보, 내가 어렸을 적, 내 어머니는 내가 아파 누워있거나 피곤해 잠들어 있으면 절대 안 건드렸어. 그래야 나았으니까....”(이럴 때 우리 어머니는 왜 또 튀어나오는지....) 벌써 전의를 상실한 아내 목소리가 차분하다. “그래, 그랬어? 난, 어려서 혼자 아팠어. 혼자 나았어. 그래서 꿈이 있었다면 내가 아파 누워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따뜻한 말 한마디 걸어주는 거였거든.” “그러면 그 이야기를 왜 진즉 안 했어?” 이번에는 내가 말꼬리를 내린다. “나도 모르니까 안 하지.” 이미 풀이 죽은 아내가 넋두리처럼 말한다. “여보. 나, 아직도 애정결핍이 있나 봐.” 마음이 아리다. 이럴 때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날 이후 지방에 강의를 갖다 자정을 넘긴 귀가길, 아내는 여전히 누워 이불을 푹 덮어쓴 채 잠들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이전 같을 수 없다. 이불을 확 뒤집어 깨운다. 화다닥 놀라 일어나는 아내한테 묻는다. ‘어디 아픈데 없어? 이마에 열은 없고....’ 아내가 깔깔대며 웃는다. “당신 왔네.” 네오나르도 다 빈치가 말했다던가?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고.” 요즘 열심히 새로 아내를 배우는 중이다. ‘배우자(학습)!’로 배우자(配偶者)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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