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을 돌며 찾아낸 시를 읽다 이기철  (Homepage) 2024-04-02(화) 07:33:18, 26360

≋ 윤창영 ≋ 기다림은 곡선이다 이 시집을 읽기 전 먼저 발간된 두 책을 다시 살펴봤다. 지난 7월에 내놓은 시 해설집, ‘윤창영의 시 읽기’와 시 에세이집 ‘사랑이란 꽃으로 못 치는 일(2018). 그간 13권이나 이런저런 내용으로 채운 책을 냈지만 시 짓는 일이 본업인 작가는 이제야 ‘기다림은 곡선이다’라는 제목으로 첫 시집을 펴냈다. 앞서 읽은 책들에서 저자가 지향하는 시선을 이미 간파한지라 이번 시집은 ‘내 시는 이렇다’는 점을 각인(刻印)시켰다. 그동안 윤 시인이 포착한 대상은 모두 간결하고 소박하게 시편에 고스란히 수집되어 독자들을 편하게 시 세계로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왜 그는 기다리는 일을 곡선(曲線)이라고 말하는가? ‘갈비뼈가 곡선인 까닭은/ 심장을 감싸고 있음이다// 직선이면 가슴을 찌르고/ 쉬이 금이 가고 깨어져/ 피 흐르기 쉽다’ <기다림은 곡선이다?2 부분> 이토록 따뜻한 배려가 어디 있는가? 직진, 직선만 요구하는 시대에 에둘러 가는 길을 제시하는 마음은 가장 소중한 뜨거움인 ‘심장’을 지켜내는 일이다. 곡선은 휜다. 휜다는 말은 휘청거림을 동반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시인 새우는 살아서도 등이 휜다/ 멀리 뛰려고 등을 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의 압력에 등이 휘어 시가 되는 것이다/ 시인 새우의 피는 C형이다/ 흘리는 피가 전부 시다’ <‘시인 새우’ 부분> 마침네 시인은 자신 혈액형조차 C형 임을 강조한다. ‘시인은 상처가 나면 시를 흘리는 사람’이라며 ‘C형이 아닌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아픔 없이 쓴 시는 시가 아니다/ 아프지 않고 흘리는 피는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시인의 시는 C형이다’ 부분> 윤 시인 시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단어만 염두에 두면 된다. ‘바다’와 ‘비’. ‘울주군 강동면 당사리 우가 128번지’(현재는 울산시 북구 우가포)가 본적지다. 시가 시작된 곳, 생명의 번지가 된 장소다. 별호(別號)는 ‘비의 새’다. ‘비가 내리면 온몸이 빗물에 타 버릴 정도로 비에 진심인 사람’이다. 시집에 등장하는 ‘빗방울 요리’, ‘빗물에 타는 몸’, ‘비소리’, ‘비의 새와 소녀의 사랑 이야기’, ‘비 오는 날 술 마시고 싶다의 시적 표현’ 등 제목만 읽어도 온몸이 흠뻑 젖는다. 시인은 17살이 되던 해,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했다. 4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퇴고(推敲)란 의미를 찾아 방황하게 했던 기간이다. 첫 시집에서 비로소 시인은 자신이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았다. ‘의도적으로 난해한 시를 피했다. 시를 읽는 일이 수학 기호처럼 지루해지면 안 된다’고 마음먹은 결과물이다. 윤 시인 시는 모두 쉽다. ‘쉽다’는 말은 작품성이 결여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드리고 펴고 달구고 식힌 지난(至難)한 시간이 보상한 시편이다. 한편 한편이 유난히 반짝이는 까닭을 눈치채게 만든다. ‘비만 오면 무작정 비를 맞던 소년이/ 빗속 혈관에 새긴/ 심장 속 하얀 뼈에 새긴 그 이름에/ 열일곱 소년이 도대체/ 시를 쓰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왜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요’ 부분> 지난 8월, 시인 어머니는 먼 길 떠나셨다. 어머니 영전(靈前)에 바친 시집이 됐다. 시인은 생전 새벽 4시만 되면 양남시장에 콩나물 팔러 나가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 손이 물집을 지었다/ 콩나물 놓는 92세 노모/ 60세 백수 자식에게 조그만 보탬 될까/ 콩나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노모/ 물을 만지지 말아야 낫는데/ 매일 콩나물을 키우기에 물집 마를 날 없다/ 백수 자식 가슴 가득 물이 집을 지었다/ 경제 사정은 어렵고 나이는 들었고/ 벌어놓은 돈은 없고 몸은 허약해졌다/ 효도하겠다는 약속은/ 선거 공약처럼 공허한 약속이 되어버렸다/ 호미처럼 구부러진 허리/ 콩나물 수레에 의지해 걸음가는 걸음/ 걸음, 걸음에/ 아들 가슴 속 물집이 터졌다/ 방울, 방울/ 눈물 걸음 뒤따른다’ <‘어머니의 물집’ 전부> 이제 그는 ‘바보 아내’가 곁을 지키고 있다. ‘그 바보가 나에겐 천사’라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리며. 시인은 오늘도 이른 시각, 어두운 길을 나선다. ‘노동의 새벽’을 향해. ☞ [울산제일일보 * 이기철 작가와 ‘책 한 권 드실래요?’]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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