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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열쇠21 - 나만 그런 게 아니야
2024-06-08(토) 07:09:08, 9010
등산할 때 숨이 차고 힘이 들면, 힐끔힐끔 일행의 표정을 살핀다.(저질 체력 소유자의 생존법이다.) 그들도 헉헉거리고 지친 기색을 보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편안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없던 힘도 생기고 콧노래까지 나온다. 친구들 모임에서, 소변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는 하소연을 해놓고 내가 기대하는 피드백은 위로도, 걱정도, 설명도 아니다. 가장 반가운 반응은 딱 한 마디. “나도 그래.” 또는 “다들 그래.” 내가 겪고 있는 고통, 불행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알고 나면 훨씬 가벼워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일깨워주는 글이 있고, 말이 있다. 몸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박경리, 박완서 작가가 맨 먼저 떠오른다. 그분들이 겪은 개인적인 아픔은, 참으로 민망한 말이지만, 그분들의 글을 읽는 ‘불행한’ 독자에게 위안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시인 신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분 산문집을 읽는데 요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그 시절 경상도 여자가 숙명여대를 나오고, 문학상도 받은 시인이라면 이슬이나 따먹고 사는 고고한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불행을 보고 가진 나의 불순한 감정에 대한 죄책감을, 나희덕 시인의 ‘벗어놓은 스타킹’을 읽은 그의 소회가 말끔히 씻어주었다. ‘이 여자, 참 행복한 여자 같은데 올이 주르르 풀리는 것을 봤단 말이야.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남들이 저처럼 불행하면 좋거든요. 덜 억울하니까요.’

대한민국 대표 강사 김창옥의 인기 비결은 물론 따로 있겠지만, 어려웠던 그의 성장사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강연 때마다 그 얘기가 양념처럼 들어간다. 그 양념에 힘입어 청중은 웃고 울고 감동한다. 백종원은 대한민국 남성의 로망이다. 그런데도 안티가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IMF 때 자살 여행을 떠날 정도로 쫄딱 망했던 흑역사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트롯가수 임영웅 열풍의 원인은 차고 넘친다. 그의 아픈 과거도 그의 인기를 높이는 데 힘을 더했을 것이다. 신달자 시인처럼 까놓고 얘기하면, 남의 불행은 위안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불행은 더 큰 위안이 된다. 그들도 다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큰 불행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불행 덕택에 저런 날들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지금 겪고 있는 자신의 불행이 문득 견딜 만해지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1942~2018)은 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할 만큼 건강했다. 21세에 루게릭 판정, 2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세에 옥스퍼드를 졸업한 영재에게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어이없게도 어린 소년이었다. 그의 옆 침대에 입원해있던 소년이 백혈병으로 죽은 것이다. 그날부터 호킹은 ‘불공평’, ‘억울’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분연히 일어선 그는 24세에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2년 시한부를 비웃듯 70대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블랙홀이론, 빅뱅이론 등으로 아인슈타인 버금가는 물리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의 힘이다.

사실 그늘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들이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고해苦海인데 어찌 그 물에 몸 담그지 않고 살 수 있으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호화로운 저택이라도 그 안에 화장실이 있고 하수구가 있기 마련이다. 마냥 행복한 척 자랑하며 남의 속 긁는 자랑쟁이들, 대개는 낮은 자존감 드러날까 조바심하는 불쌍한 사람이기 십상이다. 남의 SNS 보고 부러워할 일 아니다. 그건 하이라이트일 뿐이다. 일상은 다 오십보백보다. 우아하게 폼 잡고 있는 백조, 발은 수면 아래에서  진땀나게 움직이고 있고, 환하게 피어있는 연꽃도 실은 오염된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느 작가가 글이 나가지 않아 동네 카페에 앉아 끙끙거리고 있는데, 거구의 한 남자가 노트북을 앞에 놓고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었다. ‘천하의 봉준호도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구나.’ 그와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글이 막혀 힘들 때마다 봉준호를 떠올리며 기운을 차린다고 했다.

불행총량의 법칙 또는 행복총량제라는 말이 있다. 일생을 두고 한 인간에게 배당된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얘기다. 지금 좀 힘들면 나중에 그만큼 편안할 것이고, 젊어서 고생한 사람에게 늙어서 그만큼 낙이 온다는 얘기다. 옛날에 지리산 종주에 따라 나선 일이 있다. 내리막이 길어지면 희희낙락했다. 그때 등산 고수가 한 마디 했다.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내려간 만큼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2박 3일 동안 오르막과 내리막의 총량이 같음을 몸으로 터득했다. 올라가면서 내려가는 사람 부러워하지 않고, 내려가면서 올라가는 사람 불쌍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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