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20 - 그러려니 김영국  (Homepage) 2024-05-02(목) 06:43:30, 18219

전국시대 제나라 맹상군은 천하의 인재를 맞아들여 한때 식객이 삼천 명(믿어도 될까요?^^)에 이르렀다. 그가 권세를 잃자 모두 그를 떠났다. 그가 다시 권세를 잡자 그들이 또 몰려들었다. 그때 맹상군이 자기 곁을 끝까지 지켜준 풍환에게 말했다. “저들을 정성스럽게 대했건만 힘을 잃자 본체만체 떠나버렸습니다. 저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습니다,” “혹시 ‘당연히 그러한 법칙’을 아십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이면 시장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가 시장이 파한 저녁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당연히 그러한 법칙’입니다. 아침이면 거기에 기대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저녁에는 기대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그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지요. 지혜로운 이는 당연한 법칙과 다투지 않습니다. 마음을 상하거나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부디 오는 사람들을 웃으며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사에 두루 있는 일이 내게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때, 그 기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상처를 받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래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이 평온할 수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한 법칙’이 자기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그런 일을 당하거나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많이 당황하고 크게 상처를 받는다. 반대로 나라고 해서 그 법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상황을 보다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다. 풍환의 조언에 따라 맹상군이 그 염치없는 식객들을 웃으며 맞이했듯 온갖 우환들을 ‘그러려니’ 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세월 속에 많은 풍상을 겪고 나름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경지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본 광경이다. 대연역에선가 초등학생들이 우루루 탔다. 어디 야외학습을 다녀오는 듯했다. 조용하던 객실이 왁자지껄 소음으로 가득 찼다. 빈자리가 하나 생기면 먼저 앉으려고 우당탕탕 경쟁을 했다. 경로석도 예외가 아니어서 백발노인이 서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한 노인이 고함을 쳤다. “조용히 해라, 이놈들아! 선생은 어디 갔노?” 젊은 여선생님이 사과를 하고 애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또 얼마 전, 동기 네 명이 온천천 벚꽃 길을 걷고 돼지국밥집에 들어갔다. 입맛이 좀 까다로운 친구가 복분자 있느냐고 물었다. 국밥집에서 그걸 찾는 노인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이 친구 나가더니 복분자 두 병을 사 들고 왔다. 종업원이 안 된다는 제스처를 하자 이 친구 정색을 하고 “그럼 나갈까?” 했다. 주문한 수육이 나왔는데 종업원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근 10년 전 구안와사가 내게 찾아왔다. 마스크로 그 부위를 가린 채 외출을 하면 내 시선은 사람들의 얼굴에 쏠렸다. 산책로, 버스, 지하철 어디에서도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인가?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잇달아 장기이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간혹 신문이나 TV에서 뉴스로 접할 수 있는 희귀한 일이 아닌가. 그게 내게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대소사를 겪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일이 공평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런 세월 속에서, 밴댕이 소갈머리였던 내가, 지하철의 초등학생들의 소란을 그러려니 바라보게 되고, 온천천변 국밥집에서 소주 한 병을 시켜 종업원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뿐인가, 깜빡이 없이 끼어들어도 바쁘나 보다 하게 되고, 아내의 해묵은 잔소리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밴댕이의 품이 그나마 좀 넉넉해진 것이다.   국문학, 민속학의 대가 김열규(1932~2013) 교수가, 퇴임 후 ‘투덜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을 듣고 좀 의아했다. 이제 생각하니 그게 보통 결심이 아니었다. ‘그러려니’ 하고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분은 이미 깨치고 있었던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만화 액자가 놓여있다. 딕 브라운이 그린 <공포의 헤이가르>이다. 바이킹 헤이가르가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까지 맞아 좌초되자, 하나님을 향해 소리쳐 원망한다. “Why me?"(왜 하필 저입니까?) 하나님이 되물었다. “Why not?"(왜, 넌 안 되는데?) 29세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 해 크리스마스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두 아들마저  부상을 당했다. 슬픔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가 준 선물이다. 투덜거리고 싶을 때 나는, ‘날씨 대하듯 하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추우면 옷 한 겹 더 입고, 더우면 한 겹 벗고, 비 내리면 우산 꺼내 쓰면 될 일이지, 변덕스런 날씨에 정색하고 대들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름에 바다로 몰렸던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단풍을 찾아 산으로 간다. 그걸 두고 바다와 산이 인간의 염량세태를 한탄할까. 벚꽃 개화시기가 늦거나, 단풍이 예쁘지 않거나,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지 않아도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산다. 이를 두고 불평하고 열내어봐야 지만 바보 된다는 걸 사람들은 이미 겪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폭넓게 적용하며 산다. “Why me?” 따지지 않는다. 세상사 원래 다 그런 거 아니던가, 품 넓게 받아들이며 산다. 그 지혜 그 품이 곧 행복의 열쇠다. 명나라 묘협 선사의 ‘보왕삼매론’이 ‘그러려니’ 수행자의 까마득한 최종 도착점이다. 1.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2. 세상살이에 어려운 일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3.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4. 수행에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5. 일을 도모함에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6. 사람을 사귐에 있어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8. 덕을 베풀되 대가를 바라지 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10.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해명하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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