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업 빼박 증거 김영국  (Homepage) 2021-08-12(목) 19:58:59, 16930

“수업 그거 오래 볼 거 있어? 지나가보면 금방 다 알 수 있지.” 평교사 시절 들었던 어느 교장의 말이다. 비슷하게 말하는 교장을 몇 분 보았다. 오만한 망발이라고 혼자 흥분했다. 적어도 한 수업의 기승전결은 다 지켜보아야지, 어찌 감히 복도 창 너머로 스쳐보고 남의 수업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교실에는 자기 전공도 아닌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저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업 중 복도를 지나가는 교장 교감이 신경 쓰였다. 입장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고 했던가. 내가 관리자가 되고 보니 나도 선배들 따라 복도를 돌기 시작했다. ‘이사도라’(24시간 돌아다닌다고) 별명도 들었다. 그냥 다니기가 민망하여 복도 난간에 얹어둔 화분에 물을 주기도 하고(환경미화심사 때 전시해놓고는 방치되기 일쑤다),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빈 교실의 스위치를 내리기도 하였다. 굳이 창 너머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어느 선생님이 무슨 수업을 하고 있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자습시키는 선생님도 있었다. 돌아다니다보니 누가 수업을 잘하고 못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좋은 수업은 복도에까지 그 열기가 느껴진다.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다. 학생 전원이 일제히 선생님한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좋은 수업이다. 이건 슬쩍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선배 교장선생님들이 척 보면 안다는 말이 이것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수업은 선생님 따로 학생 따로인 수업이다. 선생님은 교실 뒷벽을 향하여 강의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제각기 소곤대고, 먼눈팔고, 엎드려 자고 있는 교실이 태반이었다. 선생님의 열강과 학생들의 집중이 혼연일체가 된 수업은 천연기념물처럼 드물고 귀했다. 수업 중에 딴 짓하는 녀석을 지적하면 다 듣고 있었다며 항변하는 경우가 있다. 확인해보면 금방 내가 한 말을 재생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해주는 충고가 있다. 그런 상태로 들은 내용은 모래사장에 새긴 글자다.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배운 내용은 바위에 새긴 글자다. 오래 기억되고 이해도 깊다. 그때 그 충고를 그들이 얼마나 받아 들였는지 모르겠다. 인지신경과학과 교육을 접목시킨 스타니슬라스 드앤의 최근 저작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에서 새로운 학습 알고리즘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거기서 그는 배움의 네 기둥을 강조했는데 그 첫 번째 기둥으로 ‘주의(집중)’를 내세웠다. 좋은 수업의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는 수업을 마칠 때 볼 수 있다. 급장의 구령에 따라 고개를 숙이며 외치는 “수고하셨습니다.”의 볼륨이 그것이다. 학생 전원이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에 가까운 인사는 아무나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교실의 문을 열고 나오는 선생님의 표정은 으레 만면에 흡족함이 넘치기 마련이다. 열창한 가수가 관중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퇴장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사실 선생님의 보람은 제자의 훗날에 있다기보다, 좋은 수업을 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교실 문을 나설 때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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