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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산행 안내 (태종산, 운봉산, 승학산, 구봉산, 백양산, 회동댐, 와우산, 대륙봉, 금정산, 마안산)


완벽주의자의 갑옷
2021-01-13(수) 08:34:03, 134
완벽(完璧)의 ‘벽’은 구슬이다. 그러니까 완벽은 흠 하나 없이 온전한 구슬이다. 완전무결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인간이 완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인간은 그 경지를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완벽에 ‘주의’를 붙인 완벽주의는 좋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는 권위, 권위자는 긍정적인 개념이지만, 권위주의 권위주의자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내와 나를 비교하면 아내는 완벽주의자에 가깝고 나는 대충주의자에 가깝다. 상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원격 구매했을 때 아내는 작은 흠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매장을 한없이 돌아다녀야 하고 반품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집안 청소도 자주하고 매번 꼼꼼하게 한다.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싶다. 나의 청소나 설거지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설거지의 경우 환경 보호, 물 절약을 핑계로 세제도 안 쓰고 대충 헹구는 방식에 아연실색한다. 매사 완벽하려는 자신이 더 힘들겠지만 이웃인 나도 피곤하다.

어느 여고에서 K 선생님과 동 학년을 했다. 공교롭게 바로 옆 반이었다. 그 반은 아침자습 시작 10분 전에 전원이 자습에 돌입한다. 지각생이 있을 수 없다. 그 시간 담임선생님은 복도의 신발장을 정돈한다. 한 치의 어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야자 시간도 빠지는 학생이 없다. 우리 반은 배 아프고 머리 아픈 학생이 매일 생겨나는데 그 반은 웬일인지 환자가 늘 한 명도 없다. 운동장 모임 할 때 그 선생님은 학급 정면에 서서 미동도 않고 학급을 주시한다. 그 반 학생들은 조회 내내 부동자세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선생님은 학급 학생들의 태도에 대한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선생님도 그 반 학생들도 헐렁한 이웃 담임도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 육사 출신이 오면 사병들뿐이 아니라 동료 장교들도 긴장한다. 직각 보행 직각 식사 등 그들의 행동은 유별났다. 특히 그가 맡은 소대원들은 바로 지옥이다. 오지랖도 넓어 이웃 소대원들도 눈에 보이는 대로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늘 사고는 그 소대에서 일어나고 그가 당직사관을 맡은 날 문제가 발생한다. 육사 선배 연대장이나 사단장의 각별한 총애를 독차지하지만 직속상관인 비육사 중대장이나 대대장은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성가시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지만 대충주의자인 내가 기대는 말이 있다. ‘사각 됫박에 담긴 꿀을 둥근 쪽박으로 퍼내듯 사는 것이 좋다. 바닥이나 구석에 남아있는 꿀 한 방울까지 박박 긁어 담듯 살지 말라.’ 논바닥의 벼이삭을 줍고, 밥알 하나도 허투루 흘리면 안 되는 생활에 익숙한 내게 선뜻 다가오진 않았지만, 타고난 헐렁한 천성을 변호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던 중 78 대 22 법칙을 만났다. 정사각형의 각 변에 내접하는 원을 그렸을 때, 원의 면적은 사각형의 78%이고 남은 면적이 22%라고 한다. 파레도의 80/20 법칙도 이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기 중의 공기는 산소가 22%, 질소 등 다른 공기가 78%란다. 인체나 지구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78%란다. 한 나라의 부富도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백화점의 매출도 고객 20%가 80%의 매출을 올려준단다. 이를 유대인들은 대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여 상술로 활용하고 있다. 만약 공기 중의 산소량을 더 높이거나 공정과 평등을 내세워 억지로 분배를 조작하려 들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 극단적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슬렀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주의가 100 대 0(무결함), 50 대 50(완전평등)이라면 대충주의는 우주 대자연의 비율 78 대 22가 아닐까. 됫박의 꿀을 쪽박으로 대충 퍼내었을 때 퍼낸 것과 남은 것이 대략 저 비율일 것이다. 저 비율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대충 헐렁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세상이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일 터다. 그러니까 매사 헐렁한 내가 주눅 들어 눈치 보며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능력의 78% 정도를 기울이면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허약한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최고급 카펫을 짤 때 아주 작은 흠을 일부러 짜 넣었다고 한다. 그걸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한다. 미국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에 흠이 있는 구슬 하나를 꿰어 그 구슬을 ‘영혼의 구슬’이라 했다. 일본정원은 균형미를 강조한다. 일류 정원사는 공사가 끝난 뒤 한쪽 구석에 민들레 몇 송이를 심어 균형감을 살짝 흔들어 놓는다. 완벽이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그 장인들은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존 최고경영자 베조스는 완벽주의자는 몇 톤짜리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무거운 갑옷을 질질 끌며 살아가는 그가 가장 힘들겠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웃, 그 갑옷을 무언 중 강요당하는 동료도 덩달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완벽주의자여, 그 갑옷을 벗어 던지시라.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고 지엽에 돋보기를 대지 마시라. 그리고 가볍고 넉넉하게 살아가시라. 매사를 완벽하게 하기엔 인간은 턱없이 부족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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