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김영국  (Homepage) 2020-03-14(토) 20:45:11, 11671

우한코로나 예방대책 가운데 하나로 ‘거리 두기’를 제안하고 있다. 개인 간의 거리가 2미터 이상이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산책길에서 추월하기도, 마주 보며 지나치기도  민망해진다. 안 그래도 소원한 익명의 사회가 더 삭막해질까 걱정된다. 고슴도치 딜레마가 생각난다. 겨울밤 추워서 다가가면 상대의 바늘에 찔리고 떨어지면 얼어 죽을 지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슴도치가 애처롭다.(쇼펜하우어의 걱정과는 달리, 고슴도치들은 시행착오 끝에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나눈다고 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더 친밀해지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훅 다가오면 흠칫 물러서는 모순된 심리를 수시로 경험한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 두기는 영원한 숙제다. 나는 여학교에 많이 근무했다. 남교사와 여학생과의 거리 조절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직접 간접으로 경험했다. 내 원칙은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이었다. 다가오면 밀어내고 달아나면 당기고, 이른바 밀당의 고수가 되었다. 남자 교생이나 새내기 남교사가 오면 이 노하우를 전수해주지만 막무가내로 들이대거나 토라져 멀어지는 여학생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 매는 걸 자주 목격했다. 원로 여교장 한 분은, 교실에서 단 둘이 면담할 때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실 문을 열어두라고 훨씬 구체적으로 지도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의 성격에 따라  4가지 거리로 나누었다. *밀접한 거리(0~46cm): 서로 만지고 체온 나누고 심장소리 들림: 엄마와 아기, 연인, 부부 *개인적 거리(46~120cm):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사회적 거리(1.2~3.6m): 회의 테이블을 가운데 둔 거리: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관계 *공적인 거리(3.6~7.5m): 개인과 다중의 거리: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공연자와 관객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거리를 이렇게 두부 모 자르듯 반듯반듯 정할 수는 없다. 공간 거리 말고 시간 거리도 있고 마음 거리도 있다. 이를테면 그리움의 거리는 얼마쯤 될까. 어느 정도의 공간 거리 시간 거리에서 그리워지고, 얼마나 멀어지면 그 그리움이 사라질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한 시인 류시화의 거리와 시인 유자효가 주장한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극단적이다. 역시 ‘거리 두기’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일 수밖에 없다.      그를 향해 도는 별을      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      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      끝이 없는 그리움               -유자효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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