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결심 김영국  (Homepage) 2020-01-10(금) 19:41:06, 8932

칭기즈칸이 사냥터에서 목이 말랐다. 옹달샘을 발견하고 쪽박으로 물을 떠서 마시려는 찰나 어깨에 앉아있던 사냥 매가 바가지를 낚아채어 물을 엎질러버렸다. 매를 타이르고는 다시 물을 뜨는 순간 또 바가지를 엎어버렸다. 목이 잔뜩 마른 터라 매에게 심하게 야단쳤다. 이제 알아들었겠지 하고 물을 떠서 마시려는 순간 또 몽니를 부렸다. 화가 폭발한 칭기즈칸은 칼을 뽑아 매를 죽여버렸다. 다시 물을 뜨려고 구부리다가 바로 위에 있는 샘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 맹독성 독사가 죽어있었다. 매가 말썽을 부린 까닭을 알아차린 칭기즈칸은 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앞으로 화가 난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도 결정도 하지 않겠다.‘ 화를 다스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행하는 사람에게도 분노는 풀기 어려운 화두다. 오죽하면 화를 내는 빈도를 보고 수행의 정도를 가늠한다고 했겠는가. 어느 나라에서는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다음 생에 못생긴 얼굴로 태어난다고 가르쳤고, 좋은 신랑감의 첫 번째 조건으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으로 잡은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불쑥불쑥 화를 내고 그럴 때마다 과잉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을 정신과에서는 분노조절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어느 상담심리학자가 살인범의 범행 동기를 조사한 적이 있다. 상대방의 ‘무시’가 절대 다수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자존심이 급소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판단되면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연쇄 살인범 까불이가 그런 인물이다. 청소년 상해죄도 대부분 ‘욱’하는 분노가 그 원인이다. 보통 사람들도 분노한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은 평소 언행과 한참 동떨어지기 일쑤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화를 다스리는 것이지만 그건 아무나 넘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화는 어쩔 수 없지만 화로 인한 과잉행동을 피하는 방법을 나름으로 터득하고 있다. 칭기즈칸의 저 결심도 그 하나일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그러한 지혜가 절실하다. 그런 분의 과격행동의 결과는 보통 사람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국의 대통령이 화난 상태에서 일을 그르치면 그건 국익 국격 나아가 국가의 존망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어떤 정책을 백지화했다고 했다. 평소 진중하고 온건한 성품으로 비쳤는데 그 정도 일(대통령 기록관 건립)에 ‘불같이’ 화를 내셨다니, 그렇다면 혹시 하는 걱정이 스쳐갔다. 아닌 게 아니라 지소미아, 대학입시, 검찰 때리기 등의 과격한 정책들은 모두가 평상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교롭게도 일련의 정책들이 모두 조국 사태로 심기가 심히 불편할 때 결정되었다. Anger에 한 철자만 보태면 Danger가 된다. 지금 대통령의 언행을 보고 있노라면 매우 위태롭다. 또 한 분의 불행한 대통령을 보게 될 것 같아 불안하다. 퇴임 후를 걱정한다면, 공수처를 만들고, 요상한 선거법으로 정권 재창출하겠다는 생각 대신 화난 상태에서는 더 이상 어떤 결정도 하지 않겠다는 칭기즈칸의 결심을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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