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다 히로-이 사람4 김영국  (Homepage) 2019-12-29(일) 08:46:04, 8784

오노다 히로(小野寬郞 1922~2014)는 40여 년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참 별난 사람이라고, 일본 놈들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인종이라고 잠시 입방아를 찧다가 잊어버렸다. 최근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다가 이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때와 달리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체 이 사람은 위대한 사람인가, 아니면 모자란 사람인가. 이 사람이 그렇게 유별난 행동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인 특유의 민족성일까. 사무라이 전통의 계승일까. 아니면 교육의 영향일까. 신념은 굳건해야 하는가, 유연해야 하는가. 윗사람의 말은 고분고분 듣고 철석같이 지켜야 착하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가치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본인에게 천황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굳이 일왕이라 부르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저 책의 저자는 ‘자기 파괴적’ 이상 신념 가치 항목에서 이 사람을 예로 들고 있었다. 육사를 갓 졸업한 오노다 소위는 1944년 12월 필리핀 루방 섬으로 파견된다. 떠나기 전 상관의 지시는 하나였다. 끝까지 버티라는 것이었다. 항복은 물론이고 옥쇄도 금지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미군의 진군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소모품이었던 셈이다. 훈련되지 않은 병사 200여 명을 이끌고 활주로를 파괴하는 등 유격전을 벌이던 중 1945년 2월 미군의 공격을 받는다.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힘도 써보지 못한 채 거의 전멸한다. 살아남은 수십 명의 일군은 밀림으로 숨어든다. 오노다 소위는 부하 3명과 함께 밀림 속에 아지트를 만들고 유격전으로 항전한다. 일본 패망 후 패전을 알리고 귀순을 종용하는 삐라를 밀림에 대대적으로 뿌린다. 대부분의 일본군은 순순히 항복하고 귀국한다. 그러나 오노다 일행은 그것이 미군의 심리전술이라 믿고 버틴다. 이듬해 오노다의 옛 부하들이 오노다를 부르며 전쟁은 끝났으니 함께 고향으로 가지고 외쳤다. 역시 미군의 간계라고 간주한다. 계속해서 원주민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을 죽이고 식량을 약탈한다. 이번에는 오노다의 형제를 보내어 설득했으나 역시 꿈쩍하지 않았다. 원주민의 피해를 보다 못한 필리핀은 1954년 토벌대를 투입하였다. 오노다를 따르던 병사 두 명이 죽고 1965년 마지막 병사 고즈카 일병마저 전사한다. 오노다는 단신으로 유격전을 전개하며 원주민을 괴롭힌다. 1974년 겨울 괴짜 모험가 스즈키 노리오가 혼자 그 밀림 속으로 오노다를 찾아나선다. 정찰방법도 심리 전술도 모르는 스즈키의 무기는 단 하나였다. “천황께서 걱정하신다.”는 메시지였다. 그 말에 오노다는 드디어 스즈키 앞에 나타났다. 패전은 인정했으나 상관이 항복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할 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온 스즈키는 옛날의 상사를 찾아내었다. 상사의 항복 명령서를 받아들고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앞에서 투항하였다. 마르코스는 30여 명을 살해한 그의 죄를 사면해주었다. 그의 아지트에는 잘 손질된 소총과 실탄 500발 수류탄 6발이 남아있었다. 스물두 살 앳된 청년이 쉰 두 살 중년이 되어 돌아왔을 때 일본열도는 감격으로 들끓었다. 패전의 기억으로 침체됐던 일본 사회는 ‘일본 정신’, ‘진정한 사무라이’가 환생했다며 환호했다.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그는 인기와 부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마주한 당시 일본 사회는 그를 크게 실망시켰다. 옛날의 일본 정신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사회는 온통 경박한 자본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기를 등에 업고 강연을 다니며 옛날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었지만 작은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절망한 그는 1975년 조국을 등지고 브라질로 떠나 목장주가 되었다.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10 년 만에 다시 귀국한다. 1996년 루방 섬을 찾아 현지 학교에 일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평범한 노후를 보내다가 2014년 도꾜 한 병원에서 91 세로 기구한 일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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