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의 유래 김영국  (Homepage) 2019-11-15(금) 19:46:29, 7290

1974년에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었다. 덕택에 중학생들은 명문고 입학을 위한 입시 부담에서 해방되었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금방 나타났다. 가장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수준이 극단적으로 다른 학생들을 한 교실에 앉혀놓고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준을 낮추면 상위 학생들이 흥미를 잃고, 높이면 하위 중위 학생들이 포기를 했다. 결국 평준화는 하향평준화의 길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교육 당국과 학교는 다각도로 노력했다. 수십 년 동안 각종 연구학교 시범학교를 운영하며 그 방법을 모색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해낸 것이 우열반 편성이었다. 반 편성 고사를 치거나 학년 또는 학기 성적을 바탕으로 상 중 하 세 수준으로 나누었다. 선생님들의 업무부담도 엄청났지만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일반사회의 반대여론도 들끓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수준별 이동수업이었다. 수학 영어 국어 등의 시간에 학생들이 자기 수준의 교실에 옮겨 가서 수업을 받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각 수준에 맞추어 수업 준비를 하고 거기에 따른 교재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내신 성적 때문이었다. 세 수준에 다 맞추어 출제하려다 보니 결국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느라 학교만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다가 교실 내 수준별 수업이라는 기상천외의 방안도 나왔지만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일반계 고교의 수업은 이도 저도 아닌 수면 시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교 붕괴 공교육 불신이라는 비난이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내신 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는 꼬박꼬박 나왔지만 정작 공부는 학원에 의존하였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나중에는 학교마저 이런 현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자연스럽게 수준별 수업의 근본적 대책, 수월성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영재고 과학고 외국어고 등이 등장하고 잇달아 자사고가 설립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련의 일들이 대책 없이 시작한 평준화의 부작용을 해소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또 대책 없이 자사고 외고 등을 한꺼번에 폐지하겠단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경험들을 다 깔아뭉개고 화끈하게 1970년대의 교실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저 곡절 많은 자사고의 유래도 생각해보지 않고 적폐 청산하듯 확 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나는 자사고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 손자 하나가 울산에 있는 자사고에 다니고 있어 피상적으로나마 듣고 있다. 우선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어 부모들의 몸과 마음이 편하겠구나 생각했다. 학비는 비싼 편이나 그 대신 사교육비가 안 드니 오히려 부담이 덜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선생님들의 열정도 대단하고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도 좋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행사 등이 일반 학교에서는 넘보지 못할 경지에 가있었다. 특히 학생이나 학부모의 학교 교육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교육 당국의 눈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모양이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행정력으로 바로 잡아가야지 아예 폐지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단세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교육정책을 논의 과정도 없이 이렇게 서두를 수는 없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장관이 소요예산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날은 7700억이라더니 다음 날은 1조 5억, 1조 500억, 결국 1조 5000억으로 오락가락했다. 정시 확대와 함께 자사고 폐지가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나 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교육을 가지고 표 장난을 칠 수 있는가. 진짜 평등을 추구하고 여론을 따르려거든 과학고 영재고도 없애고(이재정 교육감이 그런 주장을 했다.)  중고생의 해외유학도 못 가게 해야 할 것이다. 농어촌의 마지막 생명 줄로 어렵사리 만들어온 지역 명문고도 이참에 없애겠단다. 좌파는 평등을 획일화로 생각한다. 그것도 처진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앞선 자를 끌어내려 일렬횡대로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 다양한 인재가 요구되는 21세기에 똑같은 붕어빵을 양산하여 어쩌겠다는 것일까. 고등학생들이 야자시간이나 독서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보고 정시 수시를 얘기하시라. 의미 없는 지식을 외고 또 외어 암기 기계가 되고, 비슷한 문제집을 풀고 또 풀며 피를 말리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수능과 내신 위주의 정시를 확대하시라. 자사고 외고 폐지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일반계 고등학교를 예고 없이 찾아가 수업시간의 교실풍경을 보시라. 학생들은 엎드려있고 선생님만 교실 뒷벽을 향해 수업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되면 자사고 외고를 폐지하시라. 제발 고민 좀 하시라. 제발 현장 좀 가보시라. 청소년과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 뭐가 그리 급하신가. 뭐가 중헌디?????? *뱀발 느닷없이 정시 확대와 자사고 폐지가 잇달아 등장한 배경을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정시 확대는 김상곤 장관 시절부터 청와대의 생각이었다. 그게 국민 여론에 부합하여 표를 더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에 대통령의 뜻을 넌지시 암시하며 전문가들에게 맡겼는데 그 전문가들이 거의 전교조 성향이라 뜻대로 되지 않은 채 봉합되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났다. 대통령은 조국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제도를 바꾸라고 지시했다. 김상곤 라인이 포진하고 있는 교육부가 호락호락 따라주지 않았다. 길이 아닌 길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정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높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교육부를 따돌리고, 대통령이 직접 정시 확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문제가 생겼다. 정시 축소를 꾸준히 주장해온 전국의 좌파 교육감과 전교조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 기세가 예상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전교조는 민노총과 함께 촛불의 핵심세력이 아닌가. 왼쪽 눈과 왼쪽 귀만 열어놓고 왼쪽 팔로 그쪽만 껴안아 온 대통령으로선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번쩍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들의 숙원이었던 자사고 특목고 폐지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것도 표를 보태주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요원의 불길이 번지기 전에 부랴부랴 시행령을 바꾸어 그들을 달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들끓던 전교조와 교육감들의 목소리가 일거에 잦아들어버렸다. 거기다  ILO 가입안의 비준으로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도 풀어주겠다고 덤까지 얹어주었다. 길길이 뛰던 그들은 지금 표정 관리에 여념이 없다. 한 나라의 정책이, 그것도 백년대계의 교육 정책이 이렇게 주물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국정농단이 아니면 대체 뭐가 국정농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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