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vs 정시 김영국  (Homepage) 2019-10-27(일) 09:52:34, 6939

느닷없는 입시 담론이 개탄스럽다. 작년 내내 온 나라가 입시문제로 야단법석이었다. 무슨 위원회를 급조하고 개혁안 네 개를 내놓고 사지선택형 여론조사를 벌여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결국 김상곤을 장관직에서 쫓아낸 끝에 가까스로 만들어낸 안을 일 년 만에 뒤엎으려 한다. 그 배경 과정 절차 등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첫째, 이 논란이 촉발된 계기가 어이없다. 조극 딸의 입시부정은 제도 탓이 아니라 희대의 사기꾼 가족이 벌인 기상천외한 위법행위다. 좌파들은 자기 진영 개인의 문제를 제도나 환경의 문제로 둔갑시키는 데 이력이 나 있다. 조국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 때문이라고 우기며 백년대계를 우격다짐으로 갈아엎고 있다. 둘째, 우리가 목도한 것은 10년 전의 제도인데 그것에 분노하고 있다. 그 동안 해마다 보완되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나는 퇴임 후 7년 동안 입학사정관을 했다. 자기소개서를 자기가 썼는지를 가려내는 앱도 개발되었고, 교내상만 인정하고 외부상이나 외국에서의 봉사활동 등을 학종과 자기소개서에 못 쓰게 하고 있다. 소개서에 부모의 직위를 암시하는 말이나 외부에서 받은 상 또는 교육활동 등을 기재하면 불합격처리한다. 사정관의 면접 기술도 많이 단련되었다. 셋째, 정시를 늘이라는 대통령의 생각이 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가 없다. 교육부 장관도 몰랐고 당내 교육 전문가들도 연설을 듣고 놀랐다. 정부도 당도 아니라면 어디 비선이 있단 말인가. 그래놓고 11월 말까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으란다. 대학입시제도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너무 나갔다. 넷째, 입시제도의 개선 방향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있다. 전문적이고 중차대한 문제를 대통령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어느 날 문득 지시하고 시한까지 정했다. 대명천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무지막지한 독재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시 내용은 온당한가. 불공정에 분노한 국민들에 영합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성이 높다는 것쯤이야 모르는 국민이 없다. 무릇 시험은 신뢰도와 함께 타당도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선발기능 못지않게 초중등 교육정상화 기능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대학입시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시는 수능과 내신으로 전형한다. 수능과 내신은 수치로 나타난다. 가중치 등으로 요리하면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나온다. 그걸로 전국의 수험생을 일렬로 세울 수 있다. 그 순서에 따라 뽑는 것이 정시다. 공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학교는 무얼 어떻게 가르치고 피끓는 청소년들은 늦은 밤까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달달 외고 또 외어서 암기 선수가 되고 만다. 과연 이 시대 이 사회가 그런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가. 우리 애들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공정’과 ‘단순’만 챙기면 되는 건가. 수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으려고 만든 제도다. 그냥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우리 대학 우리 학과에 ‘적합한’, ‘가능성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이런 건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 객관성 높은 정량평가가 아닌 주관성이 개입되는 정성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수능과 내신뿐 아니라 교과외 활동을 주목하게 되고 그래서 학종을 면밀히 살핀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학생들은 암기 기계가 아닌 자기의 적성과 꿈에 맞추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초중고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떤 인재가 길러지겠는가. 정시를 30~50% 늘리면 이 땅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는 틀림없이 수시와 정시를 다 준비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애들 죽이는 일이다. 학부모들 등골 빠질 것이 뻔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대통령은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필시 청와대 586 참모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정시를 확대하면 지지도가 올라가고 득표에 유리할 것이라고. 나는 정치인의 말이나 정책을 볼 때 먼저 저 말이 저 정책이 다음 선거를 의식한 것일까 아니면 다음 세대를 의식한 것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물론 대통령도 정치인이니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후세를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단임 대통령의 좋은 점 하나는 재선보다 역사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입제도만 두고 말한다면 교총은 틀렸고 전교조가 맞다. 대통령이 틀렸고 김상곤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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