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것 - 이 시 2 김영국  (Homepage) 2019-10-24(목) 09:28:09, 6828

제목에 배반당한 영화가 있다. 로베르트 베니니가 감독하고 주연한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것이다. 제목을 보고 내 취향 ‘잔잔 훈훈 달달’을 다 담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치 치하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 부자의 가슴 아픈 얘기였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시도 제목으로 나를 낚는 데 성공했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범박하게 분류하면 첫눈에 반하는 경우와 서서히 스며드는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 편이다.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에 ‘메꽃’(일본 원작의 제목이다)이 주요 모티브로 나온다. 드라마에서 메꽃의 꽃말이 ‘서서히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으로 소개되고, 두 남녀의 사랑도 그렇게 깊어간다. 나는 이 시도 그런 달달한 사랑을 담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너무도 짠한 내용이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엄마 꽃게의 말 위에 ‘숨바꼭질하는 거야. 나오면 안 돼’  어린 아들에게 타이르고 떠나는 아빠 귀도의 대사가 오버랩 되어 더욱 안쓰러웠다. 삼투하는 용액이 달달한 사랑이 아니라 짜디짠 간장이었던 것이다. 간장게장을 즐기시는 분 중에 마음이 여린 분은 아래 시를 읽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시 때문에 밥도둑을 포기한 사람이 숱하게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를 쓴 시인 안도현은 여전히 간장게장을 즐기고 있다고 으흐 웃으며 고백했다.  고약한 분^^ 스며드는 것 <span style="padding-left:500px">안도현</span>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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