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완용-이 사람1 김영국  (Homepage) 2019-07-04(목) 20:09:27, 4011

이완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평론가 김병익의 말 때문이다. 3.1운동을 앞두고 손병희가 이완용을 민족대표로 섭외하려 했다. 그러나 이완용은 완곡하게 사양했다. 이미 매국노로 찍혀있는 내가 거기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다행히 운동이 성공하여 돌에 맞아 죽는다 해도 하는 수 없다. 100 년을 건너뛰어 우리가 바라보는 이완용과 당대에 함께 숨 쉰 손병희의 이완용은 많이 다름에 틀림없다. 손병희에게 그는 민족대표 자격이 있고, 거사를 앞두고 기밀을 나눌 수 있는 신뢰의 인물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집필진의 한 사람이었던 분이 본의 아니게 이완용 평전을 쓰게 되었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중단하려 했다고 토로하였다.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아 계속 써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완용은 1858년 한미한 양반 이호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세도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이완용의 인생길이 급커브를 그린다. 조선 최초의 외국어 학당에 들어가 영어를 습득하여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의 참찬관으로 도미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는 친미 반일의 정동파 핵심으로 활동한다. 독립협회 독립문 독립공원 창설에 위원장 또는 회장으로 앞장선다. 독립문의 글씨도 그의 휘호였다.(그의 글씨는 일본 명사들이 탐낼 정도로 유명했다.) 고종에게 그는 껄끄러운 충신이었다. 옳지 않은 일은 조목조목 따져 고종을 설득하는 한편, 어려운 일을 합리적으로 원만하게 처리해내는 수완가였다. 을사년에 그는 학부대신이었다. 일본이 강요하는 보호조약을 고종과 휘하 대신들은 똘똘 뭉쳐 반대했다. 이등박문의 위압에도 대신들은  반대했고 고종은 병을 핑계로 이등박문을 만나주지 않았다. 국내외 정세를 보거나 고종의 성격으로 미루어 끝까지  버틸 수 없음을 내다보고, 이완용은 반대는 하되 조약 내용 중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조약의 적용범위 조약의 유효기간 등을 수정하는 실리를 취했다. 결국 조약은 강제로 체결되어 조약 아닌 늑약이 되었다. 경술국치를 앞두고 이완용은 자객의 피습을 받았다. 치료를 받고 난 뒤 그는 요양을 핑계로 서울을 떠났다. 절체절명의 난국에 고종은 이완용이 절실했다. 조정에 들어가면 어떤 악역을 맡아야 할지를 알고 있는 그였지만 고종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병합에 대한 일본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것을 막을 힘이 우리에게 없고, 우리를 도와줄 열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진회를 등에 업은 송병준과 이용구는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병합을 따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황실과 백성을 위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는 선에서 그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었다. 그 보답으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아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다가 1929년 그는 69 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완용은 친일파의 원흉으로서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다. 이는 수학으로 치면 공리다. 여기에 혀를 대는 순간 만인의 적이 된다. 돌 맞을 각오로 혀를 대본다. 과연 이완용이 없었으면 대한제국이 살아남았을까. 이완용 때문에 병합이 더 빨라지고 병합의 조건이 더 나빠졌을까. 아니 망국의 원흉이 과연 이완용일까. 벼랑 끝까지 굴러내려온 나라를 일개 대신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이완용이 민영환처럼 자결하는 것이 과연 나라를 위하는 길이었을까. 이완용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처신하기 힘든 세 자리가 있다. 첫째는 쇠약한 나라의 재상이고, 둘째는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이고, 셋째는 빈궁한 가정의 주부다.” 그는 그 어려운 자리에서 최악의 역할을 해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탐욕 때문이 아니라, 평소의 소신이었떤 현실주의 합리주의 실리주의에 입각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자기를 믿어주는 고종과 나라를 위해 자신이 오물을 뒤집어쓴 건 아닐까. 뒷날의 영화는 그가 기대한 바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든 독배가 아니었을까. 그것을 뿌리치거나 자결을 할 만한 결기 부족이 그의 죄가 아닐까. 내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이완용이 친일파가 아니라 오히려 애국자였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공리를 뒤집을 능력도 생각도 없다. 다만 그가 매국노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독일 태생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써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2차대전 A급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그녀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발견한다. 정신과의 진찰 결과에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인간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아렌트의 주장에 유태인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이 놀라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아버지고 남편이었으며 국가의 명령에 충실한 유능한 공무원이었다. 인간은 한 단어로 규정할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 고정시켜 파악하고 평가하고 대우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 모범생 등의 단어 속에 한 학생을 가두어버린다. 역사에서는 폭군, 성군, 충신, 간신 등으로, 현실에서는 친북, 수구, 전과자 등으로 한 인물을 치부해버린다. 현실 속의 인간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다 배웠으면서도 실제 사람을 대할 땐 선인 악인 아군 적군 등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해버린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습관은 이 게으름뱅이의 제어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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