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인생 김영국  (Homepage) 2018-03-18(일) 14:49:14, 2205

지공선사로 지하철이 공짜가 된 지 오래다. 역세권으로 집을 옮기고 나니 지하철이 자가용이 되었다. 운전과 주차가 신경 쓰이는 승용차는 아파트 주차장 지킴이가 되었고, 돈 들고 불편한 버스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안 탄다. 그러니 교통비가 거의 들지 않게 되고, 자연히 나들이가 많아진다. 이를테면 부전시장, 자갈치, 기장시장 등 원근을 가리지 않고 시장을 따라다닌다. 덕택에 싸고 신선한 반찬을 얻어먹는다. 또 고마운 공짜는 도서관이다. 요즘 다니는 구청 도서관은 집 앞 별관 도서관에 비하면 대천지 한바다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그 넉넉한 공간을 우리 집 거실처럼 쓸 수 있다. 잡지도 없는 게 없고 신간도 계속 들어온다. 책을 다섯 권까지 2주일 간 빌려준다. 지하철에서 멀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을 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누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공짜 천지다. 종이 신문을 끊었다. 컴퓨터에 온갖 신문이 다 들어있다. 무거운 사전을 들출 일도 없고, 잊어버린 것을 되살리려고 책을 뒤지거나 머릿속을 헤집을 필요도 없다. 듣고 싶은 노래도 오디오 없이 들을 수 있고, 필름 걱정 없이 사진을 찍는다. 별의별 앱을 공짜로 깔아놓고 즐기고 있다. TV도 보물창고다. 시청료 통신비 조금 내고 나면 리모콘 하나로 별천지에 들어간다. 공중파  케이블 종편 등등 채널이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다시보기는 무궁무진이다. 9시에 잠이 드는지라 그 이후 프로는 여기에 의존한다. 따끈따끈한 것은 유료지만 몇 주 식은 것은 다 무료다. 드라마, 예능, 시사 교양 입맛대로 골라 본다. 영화도 공짜가 수두룩하다. 뿐인가. 라디오도 그렇다. 시간 대 별로 이 방송 저 방송 옮겨 다니며 듣는다. 이건 청취료도 없다. 공짜 화장실도 빠트릴 수 없다. 서유럽 갔을 때 불편했던 것이 유료 화장실이었다. 우린 호텔 수준의 공중화장실을 거저 사용한다. 지자체에서 애써 꾸며놓은 공원이나 산책로를 외부인인 나도 무료로 들어간다. 나올 때 먼지 털고 가라는 장치까지 서비스해 준다. 요즘 가요는 나의 배터리다. ‘추억의 소야곡’부터 ‘항구의 남자’까지 저작권료 없이 흥얼거리고 다닌다. 참 좋은 세상이다. 나는 세상에 공짜로 제공한 것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산도 공짜고 강도 공짜고 바다도 공짜 아닌가. 아니 땅도 공짜고 하늘도 공짜고 공기도 공짜다. 어릴 땐 물도 공짜로 먹고 자랐다. 너무 염치없이 살다 가는 거 아닌가. 꿀을 공짜로 먹는 벌 나비도 사실은 그 대가로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있는데. 지하철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여간단다. 나 같은 늙은이들 때문이란다. 몇 권씩 사던 책을, 도서관 다니면서부터 사지 않는다. 책 쓰는 사람이나 출판사들은 어떻게 살지? 프로그램 제작자, 영화사, 앱 개발자 들은 밥이나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신문사와 기자들은 앞으로 뭐 먹고 살지? 나라와 지자체 재정도 엉망이라던데. 결국 우리 후손들의 짐 아닌가. 저출산으로 함께 나눠 질 사람도 적을 텐데. 오지랖은 넓어서 온갖 걱정 혼자 다 한다. 나 같은 늙은이는 사는 것 자체가 민폐라는 말도 곧잘 한다. 그러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공짜를 반납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 나도 별수 없구나. 복지 남발 운운하며 우국지사연 해쌓더니, 어느 새 내가 공짜 중독에 빠졌구나. 공짜 인생 즐기고 있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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