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 교육의 추억9-스킨십 김영국  (Homepage) 2017-05-09(화) 08:38:06, 2696

스킨십은 영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굳이 영어로 바꾸면 physical touch쯤 된단다. ‘살갗 닿기’ 또는 ‘피부접촉’으로 순화했으나 ‘스킨십’이 대세가 돼버렸다. 예능 프로에서 이 말은 무서운 속도로 의미가 확장되어 가끔은 방송 용어로 위험한 경계에까지 넘나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본디 이 말은 ‘쓰다듬다’ ‘다독이다’ ‘토닥이다’ ‘어루만지다’ 등의 행동을 일컫는 말이었다. 칭찬, 위로, 격려 등의 신체적 언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새 성추행을 뜻하는 말로도 의미가 타락했다. 성추행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나의 과거가 떠올라 편치가 않다. 가장 많이 했던 스킨십은 팔이나 등을 슬쩍 치는 것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팔을 툭 치며 “잘하고 있재?” “열심히 해.” “성적 올라갔데,” 하면서 스쳐지나갔다. 야자할 때 코를 박고 몰두하고 있는 기특한 녀석에겐 등을 조용히 쳐주었다. 그것이 알은체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진 찍을 때 밀착 포즈를 취한 것이었다. 소풍지에서 선생님끼리 식사를 하고 있으면 주뼛주뼛 몇 녀석이 주위를 맴돈다. 반짝이들이 사진을 찍자는 신호다.(남녀공학인 사대부고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사진을 찍을 때 대동하고 온 카메라맨이 포즈를 잡아준다. ‘더 가까이!’ ‘좀 웃으세요.’ “00야, 팔짱!” 카메라맨이 바뀔 때마다 더 밀착시키고 그럴　때마다 탄성이 터진다. 어떤 녀석은 직접 내 팔을 들어 친구의 어깨 너머로 얹어놓기도 한다. 한번 그래놓고 나면 그 뒤는 당연히 다 껴안는 모양새로 찍게 된다. 가장 민망한 추억은 상담할 때 있었다.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면 개인 면담을 했다. 야자시간에 복도나 교무실을 이용했다. 60명을 다 만나려면 거의 일주일이 걸렸으니 담임으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성적으로 담임 앞에 앉아야 하는 학생들 또한 긴장의 시간이었다.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면 친구들이 표정을 살피며 담임이 뭐라 카던지 궁금해한다. 대개는 눈물을 훔치거나 자리에 앉자마자 엎드려 훌쩍이기 일쑤이니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떤 녀석은 너무 긴장하여 벌벌 떨면서 눈물부터 흘리며 말을 하지 못한다. 말로 달래거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켜보지만 별무효과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손을 잡아주었더니 신기하게 금방 진정이 되어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스킨십도 상담기법의 하나라는 말에 기대어 지나치게 긴장한 녀석의 손을 잡아주는 방법을 가끔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원로 여교장선생님의 말이 회자되었다. “여자의 몸은 전체가 성감대다. 절대로 몸에 손을 대지 마라. 상담할 때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출입문은 반드시 열어두어라.” 결혼 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사람의 결벽증에서 나온 말이라고들 비아냥거리면서도 경종은 되었을 것이다. 나도 그때 문득, 내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스킨십을 남용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어 자제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스킨십을 당해봤다. 간 이식 대상 환자가 되어 서울 아산병원에 갔을 때 주치의는 여의사였다. 잔뜩 긴장하여 발병경위를 더듬거리는 늙은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손이 나를 이내 진정시켰다. 매일 회진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었다. 특별한 말도 없었고, 별다른 치료나 효과도 없었다. 특진 의사로 바꿔보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이 막내 의사에게 기꺼이 내 운명을 맡겼다. 이분의 스킨십에서 나는 한없는 위안과 힘과 믿음을 얻었던 것이다. 옛날엔 귀여운 아기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볼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심지어 사내애인 경우는 고추를 만지며 약이 올랐다고 추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애기 부모는 반색하며 인사를 했었다. 그러나 요즘 새댁들은 질색을 한다. 그때의 관행이 눈 깜짝할 사이에 추행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니 열심히 상담하던 시절이 그 과도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그때 내게 스킨십을 받은 제자들 중엔 말은 못해도 불쾌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쾌했던 제자들아, 미안하고 민망하구나. 야들아, 선생님 본심은 그런 기 아이라는 거 느그 다 알재? 그래도 미안하다. 그때 선생님 생각이 짧았던 기라. 무식해서 무모했던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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