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날의 삽화 2 김원중  (Homepage) 2006-11-20(월) 15:25:22, 15012

내 나이 대 여섯살 무렵. 마산고등학교 옆에 살았다. 집이 제법 넓었고 방이 많아 당시 마고에 다니는 형들이 우리 집에 2~3명 정도 하숙을 했다. 그 형들은 옆 담을 따라 난 오솔길로 등하교를 했는데 주말에는 그 길을 따라 간혹 나와 동생을 무등 태워주곤 했다. 당시 우리 키로는 어림도 없이 높은 담너머의 세상을 그 형들 덕택에 볼 수 있었던 것이었으니, 형들이 무등을 태워 줄 때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난 것처럼 마냥 신이 났었다. 서로 태워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늘 동생을 먼저 태워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평일이었는데, 동생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도 졸라 하는 수 없이 데리고 담 옆 오솔길을 걸어걸어 마고에 들어 가게 되었다. 건물 오른 편 뒤쪽에 작은 연못(당시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넓은)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는 금붕어 등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재미있게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생이 연못 안쪽으로 손을 뻗더니 물고기를 잡으려 했고, 순간 기우뚱하더니 그만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동생은 하얗게 질려, 연방 '형님'을 외쳐댔는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나 두렵고 당황스럽던지... 위급한 걸 깨달았는지 난 '동생 살려 달라'고 고함을 연방 질러댔고, 마침 쉬는 시간이라 나와 있던 형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 중 한 형이 바로 연못으로 뛰어들었고, 동생을 안고 물 밖으로 나왔다. 연못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동생을 안고, '괘안타','괘안타'고 하며 동생을 달래어 주었다.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생을 구해준 형은 다름 아닌 우리집에서 하숙을 하던, 우리들에게 무등을 태워 주던 그 형이었다. 부모님은 그 날 저녁, 거하게 상을 차려 그 형에게 거듭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형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디서 사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당시 마고를 나왔으면 지금 사회에서 큰 일을 하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 본다. 아니 내 동생을 구해준 은인이고, 의인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군대를 마치고 그 마고 담을 아버지와 걸을 기회가 있었다. 더 이상 그 담은 높지도 않았고,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그 길도 그리 길지 않았다. 앞서 가는 아버지의 뒷머리에 언제부터인가 흰서리가 내려와 있었다.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그날은 왠지 좁고 안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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