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빻다’와 ‘찧다’ / ‘번지다’와 ‘퍼지다’ 김정식  (Homepage) 2016-09-26(월) 07:06:15, 7552

‘빻다’와 ‘찧다’   “방앗간에 가서 떡쌀을 빻아 오너라.”, “디딜방아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방아이다.”에 쓰인 ‘빻다’와 ‘찧다’는 ‘내리치다’는 동작을 공통으로 한 개념이나,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빻다’는 “고추를 빻아 고춧가루를 만든다.”에서 보듯, 대상을 내리쳐서 여러 조각으로 잘게 부순 상태(가루 따위)로 만든다는 목적성을 지닐 때 쓴다.   이에 대해 ‘찧다’는 “몇 번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스케이트를 탔다.”, “머리를 벽에 찧으면서 울부짖었다.”에서 보듯, 내리치는 동작 표현만 할 뿐, 분할된 상태로 만든다는 목적성은 없다.    곧, ‘찧다’는 내리치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둘 때 쓰고, ‘빻다’는 내리치는 동작으로 일어나는 결과에 더 중점을 둘 때 쓴다.   ‘번지다’와 ‘퍼지다’   “담뱃불이 짚단으로 퍼졌다.”, “그녀의 눈망울에 슬픔이 퍼지고 있다.” 들에 쓰인 ‘퍼지다’는 그 의미로 보아 맞지 않는다. 또 “이 민요가 우리 나라 곳곳에 번져 있다.”에 쓰인 ‘번져’도 어색하다. 앞 ‘퍼지다’는 ‘번지다’로, 뒤의 ‘번져’는 ‘퍼져’로 바꿔야 자연스럽다.    ‘번지다’와 ‘퍼지다’는 어떤 영역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를 지닌 유의어이긴 하나, 엄격히 구별해 써야 할 말이다.    ‘번지다’는 한 대상물이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옮겨지거나, 부분에서 부분으로 그 범위를 확산하는 데 쓰는 서술어로,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붕대를 감은 손등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로 쓰인다.   이에 대해 ‘퍼지다’는 “아침 햇살이 방안에 가득 퍼졌다.”,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바다에 울려 퍼졌다.”에서 보듯이, 본래 영역 또는 하나의 영역으로 고르게 확산하는 데 쓰이고 있다.    때로는 ‘번지다’와 ‘퍼지다’가 같은 자리에 쓰일 수도 있지만, 그 뜻은 다르다. “산불이 온 산으로 번져 나갔다.”는 산불이 붙은 지역에서 안 붙은 지역으로 옮겨가는 확산을 뜻하고, “산불이 온 산으로 퍼져 나갔다.”는 산불 자체가 지닌 위력이나 기세로 산 전체로 확산됨을 뜻한다. 비록 동일한 산에 발생한 산불이지만 보는 이의 관찰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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