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정일근  (Homepage) 2015-06-05(금) 08:08:51, 4493

1 조선낫으로 내 그리움을 다스릴 수 있다면 6월의 잡풀 목대궁 싹둑싹둑 잘라 버리듯이 이 막막한 사랑의 갈증 모두 베어 버리겠네 사람아 나는 아직도 첫눈에 가늠하지 못하는 바다의 이수(里數)처럼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속에 서 있나니 눈멀고 귀먹은 날에 사람아 먼 나의 사람아 2 바람이 부는 날의 저물 무렵에는 바람이 되어 그대에게로 가겠다 그대는 유배지에서 바라보는 그리운 내륙의 먼 불빛이거나 그 마을의 아궁이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 다시 그 마을로 가기 위하여 나는 바람이고 싶다 그대에게로만 부는 더운 바람이고 싶다 군말】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쓰는 편지. 그리움은 바다의 거리처럼 가늠하지 못할 만큼 크다. 그 그리움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막막한 사랑의 갈증 모두 베어 버리고 싶다. 일찍이 부처는 갈애(사랑의 갈증)에서 모든 괴로움이 비롯된다고 설했다. 갈애는 집착의 다른 이름. 그 집착을 거둠으로써 해탈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인은 기꺼이 그 잘못 든 길을 간다. 그러나 무엇으로 그 그리움 베어 버릴 수 있으랴. 차라리 바람이 되어서 불빛 같은 장작불 같은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 그것이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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