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쌈밥 최영도  (Homepage) 2013-04-19(금) 19:15:48, 3742

오늘 낮에 우리 집에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이 분들에게 `뭘 대접해 드릴까?` 처음에는 곤드레 나물밥을 대접하려했는데, 손님 숫자가 많아지면 나물밥을 앉힐 큰 솥이 없어 멸치쌈밥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멸치쌈밥은 몇 년전에 딱 한 번밖에 해 본 적이 없는 요리라 자신이 없어 포기하려다가 맛이 없어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이라 생각되어 멸치쌈밥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혹 입에 맞지 않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상용 재첩국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맘으로 찌게도 앉히고 밥도 앉혔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전문식당에서 사먹을 때 보다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즐거운 나눔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신 후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분들과 그냥 식당에서 점심만 먹고 헤어졌더라면 치루지 않아도 될 수고를 많이 하게 되는구나! 음식을 준비하면서부터 상대의 입맛과 취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되는구나! 이런 귀찮음 때문에 외식산업이 번성하는 것이겠구나! 요즘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하는 처녀 총각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잠시 만나 연애만 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은데 살림살이도 준비하고, 집도 장만하고, 애도 낳고, 키우고....... 연애만 생각할 땐 애틋함이 있었는데 결혼까지 생각하면 골치 아픈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간단하게 외식만 하고 헤어지듯 연애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 풍토가 외식산업 못지않게 번져갈 것 같다. 그런데 처녀 총각님, 그 동안에 데이트 한 번 해보고 싶은 그런 사람 만나보지 못하셨나요?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던 그런 사람 없으셨나요? 그런 사람과 나눈 사랑으로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그런 분이 계시다면 어떤 수고로움도 감수할 수 있으실 것 같지 않으세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셨다구요?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그런 사람이 되어 보실 생각은 안해 보셨나요? 나의 작은 수고가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자리할 수 있다면...... 조미료 범벅인 외식에선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삶의 깊은 맛을 같이 음미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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