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사이로 땅거미가 지고 바람에 낙엽이 나뒹구는 늦은 가을 날 오후. 최봉준 원장과는 예전에 몇 차례 만났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이안과로 향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줄곧 느낀 것이지만 최 원장은 조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다.

막 끝난 수술이 흡족하게 잘 되었는지 인사를 나누는 최 원장의 어조가 평소와는 다르게 한 톤 정도는 높은 듯했다. 상대가 맑은 목소리로 기분 좋게 맞아주니 덩달아 기분이 상쾌해졌다. 최 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말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이번에는 제법 많은 가족이 함께 했습니다. 근데 평소 안 하던 육체노동을 했더니 온몸이 쑤십니다. 하하.”

지난 주말, 고성에 있는 참다래체험마을에 다녀온 일과 지난 봄 최 원장 등 여러 가족들과 함께한 취나물캐기체험행사 때 이야기도 잠시 했다. 지인들과 함께한 이야기로 분위기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평상시 음악감상 즐기고, 가족들과 산에 가는 것 좋아해"

- 환자들 보시느라 시간이 잘 나지 않으실 텐데, 여가 활동은 주로 어떻게 하십니까?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 듣는 걸 좋아해 출퇴근할 때 차안에서 클래식과 팝을 주로 많이 듣습니다. 집무실에서도 듣고요. 가끔은 연주회나 가수들 콘서트에도 가곤 하지요.”

- 건강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하시는 운동은 없으십니까?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금정산 같은 가까운 산을 다닙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자연이 들려 주는 또 다른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고 머리가 맑아지는 게 너무 좋더군요. 그리고 시간이 잘 나지 않지만 틈틈이 골프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열심히 공부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 학술발표도 자주 하시고 논문도 자주 발표하시던데요?
“의사의 사명감 같은 거라고 할까요?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환자의 몸과 마음을 잘 치료하는 것보다 의사에게 중요한 건 없지요. 따로 봉사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봉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술발표를 하고 논문 발표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의료기술과 장비가 발전하는데, 의사가 게을러서는 제대로 환자를 치료할 수 없지요. 이건 이곳의 설립자이신 故 이송희 박사님의 유지이기도 하고요.”

실제 최 원장은 공부하는 의사이다. 최신의 의료기술을 습득하고 의료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좀 더 안전하고 완벽한 백내장 수술을 위해 ‘인피니티’라는 최첨단 장비를 들여놓기도 했다.

-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셨는데,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까?
“최근 수술한 80대 노부부가 생각이 나네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다 한 쪽 눈은 실명을 했고, 다른 쪽은 고도근시를 가진 백내장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노부부의 50대 따님도 똑같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다 수술이 안 된다고 하면서 저희 원으로 찾아오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많이들 고마워하시더군요. 그럴 때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따님은 곧 날짜를 잡아 수술할 예정입니다.”

"한 쪽 눈 실명, 다른 한 쪽 백내장 80대 노부부 기억에 남아"
"수술, 두렵지 않지만 환자 생각하면 여전히 긴장돼"

- 수술할 때 두렵지는 않습니까?
"저와 환자 사이에 흐르는 믿음의 상호교감 때문인지 수술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단지 늘 긴장을 하게 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술대 앞에 서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시신경이 워낙 예민한데다가 저를 믿고 찾아온 환자를 생각하면 꼭 그렇게 긴장을 하게 됩니다. 제 손에 의해 환자는 밝은 세상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는 의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개인적인 문제라 뭐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고요. 제 경우를 보면, 99년 이후 이곳에서 줄곧 환자를 치료해 왔습니다. 故 이송희 박사님도 마찬가지셨지만, 한곳에서 꾸준히 환자를 봐왔기 때문에 환자들이 저를 믿고 찾아오시더군요. 3代가 함께 우리 원을 찾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저는 의사 생활을 마칠 때가지 여기에서 환자들과 함께 할 겁니다.”

- 담배는 안 피우시는 걸로 아는데, 주량은 어떻게 됩니까?
“시간도 없고 해서 자주 하지는 않지만, 소주로 치면 1병정도 마십니다. 그런데 소주는 머리가 아파 잘 안 마시고, 꼬냑이나 와인이 좋더군요.”

사소한 일상을 곁들여 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약속한 30분이 지나 있었다. 최 원장은 가벼운 일상에 대한 부분에는 부드럽게 말하다가도 의사의 사명감과 환자를 치료하는 자세 같은 질문에는 신념에 찬 목소리로 강단 있게 말했다. 그 동안 경험하지 못한 최 원장의 모습이 신선하면서 뚜렷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최 원장이 ‘연습 열심히 해서 다음에 라운딩 한 번 같이 가자’고 한다.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병원가는길] 김원중 plan@webco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