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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산행 안내 (이기대, 선암호수, 금정산, 망미봉, 소등껄, 엄광산, 소등껄, 지줌산, 태종사, 대운산, 연대봉, 금정산, 금정산, 장산, 시명산, 삼포)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
2024-06-11(화) 11:23:33, 4292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고시에 합격한 한 남자가 감사원 과장으로 발령 받았다.
발령 받은 지 불과 이틀 뒤에,
이 남자는 자신의 상관인 감사원장 및 간부들, 추가하여 유관 사정(査定) 기관인
검찰총장 및 간부들을 파면하라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과연 가능이나 할까? 혹 상상 속의 일 아닌가?
그런데......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선 11대 왕 중종(中宗) 재위 11년, 1515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과장의 이름은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

조광조는 사간원(司諫院; 現감사원과 유사) 수장 대사간+사간들과
사헌부(司憲府; 現검찰청과 유사) 수장 대사헌+대관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중종에게 올렸다.

결론; 사간원 수장 대사간(大司諫)과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大司憲)이 사직하고 물러났다.
..................................
1506년,
반정(反正,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이 일어나 10대 왕 연산군(燕山君)이 폐위되었다.
연산군의 이복 동생 진성대군(晉城大君)이 조선 11대 왕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이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중종은 반정 세력의 강제 옹립으로 왕위에 올랐다.
이때 중종 나이 18세.

중종은;
반정(反正; 쿠데타)으로 형 연산군이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 가는 것을 봤다.
장인 신수근(愼守勤)이 반정 당일, 죄인으로 지목되어 살해되는 것을 봤다.

그리고, 왕위에 오르자 마자 중종은 반정 공신 세력의 압박에 밀려, 신수근의 딸인
자신의 아내, 중전 신(愼)씨가 폐위되었다.
부부는 마지막 인사조차도 할 수 없었다.
고작 나이 18세였던 중종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

신하가 왕에게 아내/중전을 폐위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왕이 자신의 아내를 지킬 수 없었던, 그런 시대였다.
중종 자신도 언제 폐위되어 죽거나 유배될지도 모르는 시기였다.
....................
지금이나 옛날이나 세상 참 모를 일이다.
간단히 또 조금 건너 뛰면서 요약하자면.....

34살의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문과(文科) 급제하며 출사(出仕)했다.
그는 1515년 11월 20일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 종6품)에 임명되었다.
이틀 뒤, 11월 22일 사간원과 사헌부의 모든 대간(臺諫; 사간원과 사헌부 관리들을
통틀어 지칭)을 파직하라는 계(啓) 하나를 왕에게 올렸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지 10년 후인 1515년. 이 무렵,
반정 핵심 공신들도 대부분 죽거나 늙거나 해서 이들의 정치적 힘이 점차 약화되는 중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의리 만땅인 지방 관료 2명이,
반정 공신들이 중종의 前왕비 신씨를 내쫓은 것은 부당하다며 중종에게 상소를
올린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쉬쉬 하며 잊고자 했던 일이라, 조정(朝廷)의 아우성과 소란은 당연.
사간원과 사헌부 대간들이 입을 함부로 놀린다며, 무엄하다며, 이 두 관료를 탄핵하고
파직 시켰다.

조광조는 이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이 지방 관료 둘을 파직 시킨 것 본질이 아니라;
언로(言路)/언론(言論)을 양사(兩司) 대간들이 막았다는 것이 본질이라는 것;
언로/언론을 보호해야 할 양사(兩司)의 대간들이 오히려 언로/언론를 막는 것은
국가의 존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조정은 조광조 지지파 vs 반대파, 둘로 쫙~ 갈라졌고.....
결과적으로 대사간과 대사헌이 교체되었다.

조광조는 이렇게 등장했다.
중종은 이런 조광조를 '봤다.'
중종 나이 28세, 조광조 나이 34세.

중종은 반정 공신들에 둘러싸여 10여 년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왔던 터에,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중종은 비로소 '봤다'
.............................................

4년 후,
1519년 11월 15일, 영문 모를 기묘한 옥사,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다.
12월 20일, 조광조는 유배지에서 사사(賜死)되었다. 향년(享年) 38세.
죄명은 붕당(朋黨)을 만들어 조정과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것.

기묘사화는 실로 기묘한 사건이다.
조광조가 관료로 활동한 기간은 고작 4년에 불과했다.

과격한 급진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기득 훈구세력의 반격에 조광조가 좌초,
실각, 처형되었다는 설(說)이 정설이다만, 그것만이 이 기묘사화 발생 이유의 전부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다.
고작 4년 동안 조광조가 개혁을 했다면 얼마나 했겠는가?

조광조가 옥에 갇히고, 전라도로 유배 가고, 사약을 받고 죽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1달 남짓이다.
너무 급하게 일이 진행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가?
무엇보다, 조광조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심지어 조광조의 반대 세력인 훈구파에서도 반대했다.
비록 기득 공신 훈구파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처형 당할 만한 정도로 과격하다거나
무리한 일을 조광조는 벌이지 않았다.

조광조를 사직 시키거나 유배 시키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자는 대신들의 의견을
중종은 거절했다.
중종은 결국 조광조를 죽였다.
중종 자신만의 결정이었다.
중종만이 알 일이다;

20대때부터 학문으로 조선 천지에 이름을 날린 조광조의 출중한 능력과
카리스마로 인해 중종 자신이 너무 왜소하고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조선이라는 나라를 왕인 중종 자신이 아니라 마치 조광조가 끌어간다고 느끼고
그를 질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광조가 붕당(鵬黨)을 조직하고 힘을 키워 나중에, 마치 반정 공신들처럼 중종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으로 의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결과적으로, 중종은 4년 동안 그렇게 조광조를 총애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를 죽였다.
조광조는 중종을 한번이라도 만나 자신을 내친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중종은 조광조의 청을 거절했다.
조광조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죽었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는 중종이 성인 군주가 되길 진심으로 원했다.

蛇足;
1545년, 중종이 죽고,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마자 조광조를 신원(伸寃), 관직을 회복시켰다.
인종은 세자 시절 내내 조광조를 용서할 것을/용서해야 함을 아버지 중종에게 고했었다.

1568년, 선조 즉위년,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追贈) 되었다.
1610년, 광해군 2년, 문정공(文正公) 조광조는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다.
그는 이후 사림(士林)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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