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바친 주기율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송성수  (Homepage) 2022-10-28(금) 13:19:00, 69024

▣ 파란만장했던 학창 시절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단위는 원소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원소는 117개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원소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 분류할 수 있다면 물질세계의 규칙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질의 성질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원소를 분류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한 시도는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즉 주기율(週期律)이 발견되면서 체계화될 수 있었다. 주기율을 발견하여 근대화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은 러시아의 과학자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 1834～1907)이다. <그림> 주기율표로 유명한 러시아 과학자, 멘델레예프 멘델레예프는 시베리아의 동쪽에 있는 토볼스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14명의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덕망이 높은 교장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비교적 부유한 유리공장 주인의 딸이었다. 특히 어머니인 마리아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공부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육신만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영혼과 정신을 위하여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가정에는 뜻하지 않은 비운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두 눈을 실명하여 교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가계를 꾸려가기 위해 친정에서 유리공장을 인수받았다. 그녀는 회사와 가정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따라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멘델레예프의 가정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 듯 했으나 불행하게도 또 다른 비운이 다가왔다. 멘델레예프가 15살이던 1849년에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던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공장마저 불의의 화재로 파괴되었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으며 멘델레예프의 성적도 나빠졌다. 수학과 과학은 보통, 라틴어는 최하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얼마 남지 않은 가재도구를 정리하여 고향을 떠났던 것이다. 갖은 고생 끝에 험준한 우랄 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로 갔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나쁜 멘델레예프를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용기를 내어 페테르부르크로 갔다. 거기에는 남편의 모교인 페테르부르크 대학 부속 사범학교가 있었다. 다행히 그 학교의 학장이 아버지의 친구라서 멘델레예프는 이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멘델레예프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생애에서 가장 커다란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정성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가 1850년 9월이었다. 고아가 된 멘델레예프는 만리타향의 조그마한 묘 앞에서 엎드려 흐느꼈다. 그 날부터 멘델레예프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였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는 것만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였다. 어찌나 공부를 열심히 했던지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하기도 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 열등생이었던 멘델레예프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는 기염을 토했다. ▣ 어머니에게 바친 책 멘델레예프는 185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한적한 시골인 크리미아 지방으로 내려가 김나지움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 1857년에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고, 1859년에는 2년간 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멘델레예프는 프랑스로 건너가 화학을 공부한 후 다음 해에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갔다. 독일에서 그는 유명한 화학자인 분젠(Robert Bunsen)과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의 지도를 받았으며, 특히 분광기를 활용하여 원소들을 색깔로 검출하는 실험을 했다. 1860년에는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원자량 측정법을 주제로 한 제1차 국제화학자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를 통해 원자량 측정법은 통일되지 못했지만, 멘델레예프는 원소의 화학적 특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멘델레예프는 1861년에 귀국하여 페테르부르크 공업대학에서 공업화학을 담당하는 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에 그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유기화학≫을 발간하여 러시아 정부가 수여하는 도미도프 상(Domidov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1862년에는 28세의 나이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당시에 멘델레예프는 분광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으며, 1865년에는 알코올과 물의 결합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에 그는 자신의 모교인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고, 2년 뒤에 정년을 보장받았다. 멘델레예프는 1868년에 ≪화학의 원리≫를 발간했는데, 그것은 ≪유기화학≫과 함께 러시아에서 화학 분야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멘델레예프는 러시아화학회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1861년에 제1차 세계화학자회의가 개최된 후 러시아 화학자들은 자기 나라에도 독자적인 학회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1866년 이후에는 멘델레예프를 중심으로 젊은 화학자들이 집결하면서 러시아화학회를 설립하는 일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드디어 1868년 10월 26일에는 러시아화학회의 정관이 채택되었고, 11월 6일에는 첫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러시아화학회의 초대 회장으로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유기화학자인 지닌(Nikolay Zinin)이 선출되었지만, 학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은 멘델레예프였다.    멘델레예프는 1887년에 ≪수용액의 연구≫를 출간했는데,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이 연구는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하여 당신의 막내아들이 삼가 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여자의 몸으로서 공장을 경영하시고 그 피땀으로 저를 양육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아들을 격려하셨으며 사랑과 자비로 엄하게 꾸짖어 주셨습니다. 이 아들을 과학의 발전에 바치시려고 시베리아로부터 수만리를 걸으셨습니다. 이 아들을 위하여 모든 재산과 귀하신 몸을 희생하시고 끝내는 쓰러지시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어머님께서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마라. 믿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실행뿐이다. 거짓말에 속지 말라. 구해야 할 것은 신의 지혜와 진리의 지혜이니라’고 말씀하셨지요. … 이 모든 어머니의 유언을 거룩한 말씀으로 생각하고 주야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주기율을 발견하다 멘델레예프는 ≪화학의 원리≫를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연구하는 동안 화학원소의 성질 사이에 비슷한 양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화학의 원리≫ 제1권이 출간된 1868년을 전후하여 이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멘델레예프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789년에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ser)는 당시에 알려졌던 33개의 원소를 탐색적인 차원에서 분류한 바 있었으며, 1815년에는 프루스트(Joseph Proust)가 모든 원소는 무게로 따져 수소의 정수 배가 된다는 가설을 발표하였다. 가깝게는 1862년에 프랑스의 광물학자 상쿠르투아(Alexandre de Chancourtois)는 원소를 나선형으로 배열하면 비슷한 성질의 원소가 수직으로 나열된다고 주장했고, 1864년에는 영국의 화학자 뉴랜즈(John Newlands)가 음표를 써서 원소를 배열하면 8개를 주기로 비슷한 원소들이 나타난다는 ‘옥타브의 법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멘델레예프는 당시에 알려진 63개의 원소를 카드로 만들어서 원소의 이름과 성질을 기록하였다. 이어 그 카드를 실험실의 벽에 핀으로 꽂아 모아 놓고 그가 모은 자료를 다시 검토했다. 그리고 원소들의 성질을 비교하여 비슷한 것을 골라 원소의 카드를 다시 벽에 꽂았다. 그랬더니 원소의 성질이 놀랄 만큼 원자량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멘델레예프는 같은 성질을 갖는 원소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한 후 원소의 성질을 원자량의 주기적인 함수라고 가정하였다. 그는 그것을 근거로 원소들을 원자량의 순서대로 배열하여 하나의 일람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멘델레예프는 위대한 발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정확히 집어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는 “내 머릿속에는 모두 정리되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불평하면서 깊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69년의 어느 날, 멘델레예프는 카드로 어질러져 있는 책상에서 연구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주기율표를 보았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꿈속에서 모든 원소들이 정확히 있어야 할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표를 보았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즉시 종이에 그것을 기록했다.” 케쿨레(Friedrich Kekule)가 1865년에 벤젠의 구조를 밝힌 것도 꿈 덕분이라고 하니, 화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발견은 꿈과 연관이 많은 모양이다.   멘델레예프는 1869년 3월 6일에 러시아화학회에서 <원소의 구성 체계에 대한 제안>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문은 원자량의 순으로 배열한 원소의 성질이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당시 알려져 있던 원소들 사이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작성한 주기율표에는 비록 빈칸과 의문 부호가 많긴 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에 대해서도 예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레예프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화학자인 마이어(Julius Meyer)도 화학원소의 주기율을 주창하였다. 과학의 역사에서 종종 나타나듯이, 마이어는 멘델레예프와 독립적으로 주기율표를 이용해 원소를 분류하였다. 누가 제대로 된 주기율표를 먼저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주기율표에 관한 논문을 먼저 발표한 사람은 멘델레예프였다. 마이어는 1868년부터 주기율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멘델레예프의 업적이 알려지자 서둘러 논문을 작성하여 1870년에 발표했다. 또한 마이어는 멘델레예프와 달리 주기율표로부터 발견 가능한 원소의 조성이나 성질을 예언하지는 못했다. 물론 멘델레예프가 예언한 것이 모두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주기율표의 응용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당시까지의 원소에 대한 분류법으로는 가장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것으로서 당대의 화학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실상 러시아어로 작성된 논문이 학문의 중심지인 서유럽 과학자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의 논문은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그의 주기율표는 당시의 화학자들에게 나침반의 역할을 담당했고, 실제로 갈륨(Ga), 스칸듐(Sc), 게르마늄(Ge) 등과 같은 새로운 원소들이 속속 발견되어 주기율표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림> 멘델레예프가 처음 작성했던 주기율표(1869년)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불활성 기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숨겨져 있다. 그가 처음 주기율표를 만들었을 때에는 오늘날 주기율표의 제일 오른쪽 세로 줄에 있는 불활성 기체에 대한 사항이 없었다. 그러던 중 1894년에 아르곤(Ar)이 발견되자 멘델레예프는 매우 당황스러워 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주기율표에 들어설 자리가 없는 아르곤이 원자가 아니라 질소원자 3개가 모여 이루어진 분자일 것이라는 억측을 부리기도 했다. 그 후 제논(Xe)이나 라돈(Rn)과 같은 새로운 불활성 기체들이 발견되자 멘델레예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주기율표에 새로운 세로 줄을 하나 더 만들어 불활성 기체를 수용했던 것이다. ▣ 노벨상과 인연이 없는 주기율 멘델레예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다. 모스크바 대학은 그를 명예교수로 추대하였고, 영국의 왕립학회는 데이비 메달을, 영국 화학회는 패러데이 메달을 수여하였다. 그는 1906년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누리지 못했다. 한 표의 차이로 프랑스의 화학자인 무아상(Henri Moissan)에게 졌던 것이다. 무아상은 불소를 순수하게 정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으며, 다이아몬드의 합성 가능성을 최초로 입증하기도 했다. 주기율에 업적을 남긴 사람은 노벨상과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오늘날과 같은 주기율표를 만든 영국의 물리학자 모즐리(Henry Moseley)가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모즐리는 1913년에 X선 분석 실험을 통해 원자량이 아닌 원자번호에 입각한 새로운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는 바람에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멘델레예프는 위대한 과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평등주의자요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재정 러시아의 귀족들의 횡포를 증오했고 농민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세금을 경감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멘델레예프는 러시아 정부의 학생에 대한 탄압을 비난하는 바람에 1890년에 교수직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깍지 않았으며 여행을 할 때에는 꼭 3등 열차를 이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레예프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 번은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교수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주지사가 총장을 호출하였다. 그때 멘델레예프는 총장에게 동행할 것을 제의하였다. 주지사는 총장과 멘델레예프 앞에서 학사 운영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큰 소리로 협박하였다. 멘델레예프는 분개하여 반격에 나섰다. “감히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단 말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당신은 군인 이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소.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멘델레예프는 과학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요. 나는 주기율표를 만들어 화학에서 개혁을 이룬 사람이란 말이요. 주기율이 뭔지 대답해 보시오.”     멘델레예프는 1893년에 러시아 도량형국의 국장으로 취임하여 러시아에 미터법을 도입하는 데 마지막 생애를 보내다가 1907년에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성대히 치러졌고 장례 행렬의 선두에는 두 명의 학생이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를 들고 있었다. 결국 멘델레예프는 자신이 평생 동안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어머니 옆에 묻혔다. <그림>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관한 조각 주기율표는 멘델레예프가 발견한 이후에 한 세기가 넘는 수정과 재배열을 거쳐 왔다. 주기율표가 포함하고 있는 원소 수는 거의 배로 늘어났으며, 완전히 새로운 군도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기율표도 여전히 멘델레예프가 고안한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계의 과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55년에 발견된 101번째 원소에 멘델레비움(mendelev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러시아화학회는 2년 마다 우수한 화학자에게 멘델레예프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과학인물)’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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