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 송성수  (Homepage) 2020-04-22(수) 09:34:13, 10477

* 사진 출처 : 온라인 백과사전 wikipedia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과학인명사전>을 위해 준비한 글입니다. 박길룡(朴吉龍, 1898~1943) 출생: 1898년 11월 20일 출생지: 서울시 종로구 예치동 278번지 사망: 1943년 4월 27일 전공분야: 건축학 박길룡은 1898년 11월 20일에 영세한 미곡상 박명옥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박씨이며, 호는 일송(一松)이다. 박길룡이 태어난 지역은 경성부(현재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으로 현재 카메라 상가와 시계 상가가 밀집해 있는 종로4가에 해당한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서 10살 무렵부터 쌀 배달, 물장수, 행상 등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고 전해진다. 박길룡의 친구인 김정현의 회고에 따르면,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집에서 같이 자랐으며 신흥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박길룡은 1916년에 김정현, 이기인과 함께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 박길룡은 경성고공을 다니는 동안 일본인 학우들을 제치고 급장(반장)을 도맡아했다. 그는 성실하고 활달하며 의협심이 강하고 보스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길룡은 경성고공 재학 중에 첫 부인 신거복과 결혼했다. 1923년에는 훗날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용구를 보았고, 이어 정애, 용무가 태어났다. 박길룡은 두 번째 부인인 김금인과 인애, 용철을 두었으니 박길룡의 자식은 모두 3남 2녀이다. 박길룡은 1919년 3월 15일에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2회로 졸업했다. 조선인으로는 이기인과 함께 첫 번째 졸업생이었다. 김정현은 중도에 탈락했다. 당시 경성고공에 다니던 조선인 30여 명 중에 20명이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박길룡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래로 네 명의 동생이 있는 처지라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박길룡은 1920년에 조선총독부의 건축 기수(技手)가 되었다. 기수는 하급관리로 ‘판임관(判任官)’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길룡은 매우 빠르고도 정확한 설계도면을 그려내는 능력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오토바이’ 혹은 ‘재봉틀’과 같은 별명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건축에 설계자의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박길룡이 설계를 맡은 건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나마 알려진 건물은 1926년에 완공된 조선총독부 청사와 1931년에 준공된 경성제국대학 본관 정도이다. 특히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에는 건축에 참여한 53명 중에 박길룡은 유일한 조선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길룡은 192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총독부 일과를 마친 후에 내직(아르바이트)으로 조선인이 의뢰한 주택과 사무소를 설계했다. 김연수 주택(1929년), 조선생명보험사옥(1930년), 김명진 주택(1931년), 종로백화점 동아(1931년), 동일은행 남대문지점(1931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박길용은 자질구레한 기교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선이 굵고 무게가 느껴지는 설계를 보여주었다.     1932년에 박길룡은 조선인 최초로 최고기술자의 자리인 기사(技師)로 승진했다. 이에 대해 당시 조선인 기사는 없었으며, 박길룡이 받은 기사는 퇴직을 앞둔 사람을 대우하기 위한 ‘참(參)기사’였다는 견해도 있다. 그가 기사가 된 지 이틀 만에 퇴직했다는 점도 이러한 견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길룡은 조선총독부를 퇴직할 무렵에 개인 건축사무소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인맥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셈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조선인이 형성한 자본에 의해 상가와 사무소에 관한 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박길룡은 1932년 5월 7일에 건축대서사(建築代書士, 현재의 건축사에 해당)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7월 7일에 ‘박길룡건축사무소’를 열었다. 그것은 조선인이 최초로 개업한 건축사무소로 평가되고 있다. 소재지는 종로구 관훈동 197번지였는데, 1층은 박길룡의 집이었고 2층이 건축사무소였다. 박길룡의 건축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루에 집 한 채씩을 설계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전성기 때 박길용의 건축사무소에는 8명의 소원(직원)이 근무했다. 경성고공 후배를 비롯한 조선인들이었고, 일본인은 한 명도 없었다. 직원들의 이름으로는 김순하, 전창일, 김관정, 이병문, 오영섭, 김한섭 등이 확인되고 있다. 박길룡의 건축사무소는 조선인 건축가들이 자주 모여 현안을 토론하고 화합을 다지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당시 조선인 건축가들의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박길룡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설계한 건축물에는 한청빌딩(1935년), 구영숙소아과의원(1936년), 화신백화점(1937년), 경성여자상업고등학교(1937년), 김덕현 주택(1938년), 보화각(1938년), 전용순 주택(1939년), 평양대동공업전문학교(1940년), 혜화전문학교(1943년), 이문당(1943년) 등이 있다. 그 중 김덕현 주택은 친일파 윤덕영이 딸과 사위를 위해 지어준 집인데, 이후에 박노수 주택을 거쳐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거듭났다. 평양대동공업전문학교는 사회주의를 꿈꾼 자본가 이종만이 설립한 학교로 해방 후에는 김일성대학에 통합되었다.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이 세운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1966년부터 간송미술관과 한국민속미술연구소가 되었다. 이처럼 박길룡의 고객에는 친일파,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등 다양한 집단이 포괄되어 있었다. 박길룡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것은 1937년 11월 종로 네거리에 준공된 화신백화점이다. 서양 고전주의 양식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이었다. 화신백화점은 당시에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었으며,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추었다. 얼마나 크고 볼거리가 많은지 아침에 들어가면 해가 져서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화신백화점은 당시 경성 인구의 80퍼센트가 구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길룡은 화신백화점의 건축가로 유명세를 날렸는데, 그의 장남 박용구는 “아버지와 같이 길거리에 나사면 몇 걸음 못가 계속 아는 분을 만나 동행에 짜증이 나곤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박길룡은 건축가로 활동하던 초기부터 과학대중화 운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1924년에는 경성공전 출신의 김용관을 중심으로 발명학회(후신은 1935년 설립된 과학지식보급회)가 창립되었는데, 박길룡은 발명학회의 창립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1933년 6월에 발명학회가 <과학조선>을 창간했을 때 박길룡은 ‘발명학회 이사장’이란 직함으로 창간사를 쓰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과학조선>을 통해 지구의 역사, 우주론, 생활의 과학화 등에 관한 글을 썼다. 박길룡은 <과학조선>에 자신의 건축사무소에 대한 광고도 냈고, 여러 차례에 걸쳐 발명학회에 기부금도 내놓았다. 특히 1934년에 거국적으로 ‘과학데이’ 행사가 열렸을 때 박길룡은 200원을 기부했는데, 그것은 <과학조선> 잡지 1,000부의 값에 해당했다. 윤치호와 이인이 300원씩을 내었으며, 박길룡은 최대 기부자 3등에 들었다. 건축가로서 박길룡은 감투도 많이 썼다. 1938년에는 조선인 최초로 사단법인 조선건축회의 이사가 되었다. 조선건축회는 1922년에 일본인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로 박길룡은 1923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다. 1941년에는 경기도 건축대서사 조합장이 되어 경기도 전역의 건축 행위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에 그는 조선건축기사협회의 이사장으로도 추대되었는데, 그 역시 조선인 최초였다. 박길룡은 1941년 4월에 우리말로 된 최초의 월간 건축신문인 <건축조선>을 창간하기도 했다. 1926년부터 박길룡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문 조선(朝鮮文 朝鮮)>, <실생활(實生活)>, <조선과 건축(朝鮮の建築)> 등을 통해 건축에 대한 다양한 글을 집필했다. 그의 주된 글감은 조선의 건축 상황을 고찰하고 선진국의 건축 동향을 감안하여 현재의 건축물을 어떻게 개량을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박길룡은 서양 건축이나 일본 건축을 맹목적으로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외래문화를 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건축과 조선 건축의 비교하면서 “일본 사람은 너무 선이 가늘어. 너무 신경질적이야. 섬사람들이니까. 우린 달라. 대륙이야 대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박길룡이 제안한 주택 개량 방안은 절충식에 가까웠는데, 외관과 구조는 서양식, 온돌과 가구는 조선식, 실내 공간은 일본식에 해당했다. 그는 자신이 집필한 글을 바탕으로 1937년에 󰡔재래식 주가(住家) 개선에 대하야󰡕라는 책자를 자비로 출판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에 들어와 박길룡의 이름은 전시단체에도 올랐다. 1940년에 일제는 황민사상을 전파하고 전쟁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 ‘국민총력조선연맹’을 결성했는데, 박길룡은 1941년에 문화부 위원, 1943년에 후생부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또한 1943년 4월에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목표로 표방한 단체인 견지공평정회(堅志公平町會)의 정총대(町總代)가 되었다. 박길룡이 이러한 직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부득이 이름만 올려놓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그가 전시단체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담당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박길룡은 1942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촉탁강사로 초빙되어 가사전수과(家事專修科)에서 주택독본 과목을 담당했다. 그는 1943년 4월 27일 오전에 이화여전에서 강의를 하던 중에 뇌일혈로 쓰러졌고, 건축사무소로 옮겨졌으나 깨어나지 못한 채 작고하고 말았다. 당시 박길룡의 나이는 45세에 불과했다. 종로초등학교에서 장례식을 마친 그는 서울 망우리 모역(109709번)에 잠들어 있다. 박길룡은 사망 직전까지 󰡔조선어 건축용어집󰡕의 발행을 위해 110장 가량의 미완성 원고를 작성해 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길룡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43년 5월에 조선건축회는 <조선과 건축> 특집호를 통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그의 분신에 다름없는 박길룡건축사무소는 후배인 김세연에 의해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채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 안타깝게도 박길룡의 대표작인 화신백화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최초의 근대적 건축교육을 받은 한국인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동 교수를 비롯한 여러 건축인들은 ‘화신백화점 보존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화신백화점은 1988년에 서울시의 종로도로확장계획에 따라 모두 헐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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