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기적들 2-화장실 김영국  (Homepage) 2020-05-25(월) 20:29:58, 14687

'Latte is horse.' 영어 선생님도 번역하기 어려울 것이다. 젊은이들이 꼰대를 비꼬는 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된다. 이런 얘긴 내 자식들마저 질색을 하니 애먼 ‘교육사랑’에 대고 넋두리를 할 수밖에. 미리 말해두지만 ‘교육사랑’은 나의 대밭이다.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봐버린 복두쟁이의 대밭이 나에겐 교육사랑이다. 대밭 같은 도타움으로 품어주리라 믿고 마음 놓고 끄적인다. 이번에는 냄새나는 화장실 이바구다. *화장실 탈북자든 선진 외국인이든 한국에 와서 놀란 것 베스트 5에 반드시 공중화장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 들어간다. 사실 말이지 외국의 어느 휴게소에서도 그런 화장실을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후진 화장실 앞에 지키고 앉아 요금 받는 곳이 많았다. 그것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작년 해남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새벽 일찍 숙소를 나와 대흥사를 찾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길, 한적한 산사는 언제나 좋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뱃속에서 좀 낭패스런 기미가 느껴졌다. 걱정은 두 가지였다. 화장실이 있던가. 화장지는 있을까. 둘 다 기우였다. 멀지 않은 길에 화장실이 둘이나 있었다. 정갈한 화장실에 고급 화장지가 비치되어있었다. 화장실을 나서면서 느닷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까지 좋아졌는가, 내 어린 시절에는 통시 또는 뒷간이라 불렀다. 그 구조, 뒤 닦는 도구 따위는 우리끼리라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다. 그때는 애들이 가끔 거기에 빠졌다가 구사일생 살아나기도 했다. 무슨 풍습인지 그런 일이 있고 나면 떡(비록 개떡이지만)을 해서 돌리기도 했다. 그 뒤에 조금 발전한 것이 나무판자로 짜 맞추었다. 판자로 문을 해 달고 문짝엔 크레용으로 WC, 노크 등을 써서 폼을 잡았다. 그때 이름이 변소였다. 그 다음에 하얀 수세식 변기가 나오고 잇달아 좌변기가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시설이 옥내로 들어왔다. 그걸 우리는 화장실이라 불렀다. 비로소 화장지라는 꿈 같은 종이를 일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비데라는 장치도 달기 시작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인간은 어느 새, 비데 없는 화장실을 찝찝해하기에 이르렀다. 내 어린 시절 그 더럽고 냄새나고 파리 끓고 어둡고 무섭고 겨울엔 춥기가 한량없던 그 통시에서 지금 아파트의 쾌적한 화장실까지 오는 데 60 년이 채 안 걸렸다. 공중화장실이 없어 들이나 산이나 길에서나 실례를 했다. 웬만한 담벼락에는 ‘소변금지’ 아니면 가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산책로 화장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다. 이런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한 개인의 생애 동안에 일어났다는 것은 ‘기적’이라 이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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