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후락先憂後樂 김영국  (Homepage) 2020-02-24(월) 21:24:33, 11095

선우후락을 한자 뜻대로 해석하면 ‘먼저 걱정하고 나중에 즐기라.’ 정도 될 것이다.  진짜 뜻을 알려면 범중엄의 글을 살펴야 한다. 범중엄(989~1052)은, 천하의 주희가 유사 이래 최고의 인물이라 극찬했던 북송의 재상이다. 그의 ‘악양루기’(고등 국어 두시언해 ‘등악양루’가 생각나십니까?^^) 후반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사람들이 즐기고 난 뒤에 즐긴다 이 부분을 줄여 선우후락이라 하여 후세의 개념 있는 위정자들이 좌우명으로 삼았다. 목민관은 마땅히 다가올 우환을 미리 내다보고 백성들보다 먼저 걱정하여 대비하고, 백성들이 다 즐기고 난 뒤에 즐겨야 한다는 뜻이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쯤 되는 말이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아닐까 한다. 맹자가 양 혜왕에게 한 말이다. 임금은 백성과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성의 눈치를 굳이 살필 필요가 없던 군주시대 이마저 실천한 임금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민심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너나없이 서민 코스프레, 눈물 정치 등으로 여민동락하는 척한다. 그런데 아래 상황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있는지 과문한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 전 소강상태에 있던 우한코로나가 갑자기 대구를 중심으로 폭발을 시작한 날이었다. 대구는 공황상태에 빠졌고 전국의 민심이 흉흉했다. 그날 청와대에서 ‘기생충’의 쾌거를 축하하는 짜파구리 파티가 열렸다. 당연히 취소하거나 연기했어야 했다. 그게 어려웠다면 아주 조용히 치렀어야 했다. 그러지도 못했다면 밖으로 드러내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미주알고주알 그 ‘즐거웠던’ 분위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발표했다. 그 천박한 개그로 근심과 공포에 빠져 있는 국민을 위로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염장을 지르자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모자라 청와대는 파티 사진을 자상하게 공개했다. 압권은 고개를 젖히고 목젖이 보이도록 앙천대소하는 영부인의 모습이었다. 내가 이 불편한 장면을 소환하는 것은 두 가지 걱정 때문이다. 이들의 지적 수준과 의사소통 시스템이 그것이다. 청와대는 당연히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의견을 나누고 수렴하는 기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일련의 과정에서 자중을 주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그 수준 그 감각 그 시스템으로 그들이 지금 나라를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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