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 이 시1 김영국  (Homepage) 2019-09-18(수) 20:10:30, 5515

삼계탕을 좋아하면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왜냐 하면 기호 식품 하나를 잃게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계탕 시즌이 끝난 가을에 이 시를 소개하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자못 노숙하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얘기를 저런 어조에 담아내려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계 내지 퇴계(退鷄) 수준의 연륜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냥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면벽하여 한 소식을 얻은 듯도 하다. 생에 대한 집착이나 인간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잡다한 번뇌 따위는 이미 다 내려놓은 해탈의 경지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삼계탕 속에 들어가는 닭은 연계(軟鷄) 중의 영(young)계다. 대체로 부화 후 한 달 남짓이라고 한다. 닭의 자연 수명이 10 년 전후라 하니 그 영계는 사람으로 치면 몇 살에나 해당할까. 계산하기가 민망하다. 그러니까 이 시는 병아리에서 갓 벗어난 어린 닭의 넋두리인 셈이다. 땀 흘리며 건져 먹는 찹쌀 밤 대추 인삼은 알고 보니 어린 닭의 머나먼 저승길 도시락인 셈이다. 살코기가 유난히 부드럽고 뼈마디의 살들이 고분고분 해탈되는 것은 그 닭이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면서 생겨나는 질긴 근육이 뼈에 엉겨 붙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한 점 부끄러움 찍을 겨를도 없었던 이승의 생이었는데 지옥물은 말도 안 되는 형벌이다. 무릇 한 편의 시를 읽기 전과 읽은 후는 같을 수가 없는 법,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읽어버린 사람이라면 삼계탕을 예전처럼은 먹지 못하리라. 애도하며 먹게 될까. 경건하게 합장하고 먹게 될까. 아니면 땀방울에 눈물까지 곁들이며 먹게 될까. ㅠㅠ 삼계탕 <span style="padding-left:500px">권오범</span>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계하고 나니 골수 녹아내려 녹작지근한 몸뚱어리 인삼 하나 끌어안고 볼썽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 누드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중력과 두 얼굴
다음글 :	지록위마 指鹿爲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