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김영국  (Homepage) 2017-10-17(화) 06:06:48, 2181

“그거 있잖아. 그것 말이야.” “거기 없어요? 거기 말고 거기요.” “그 사람. 그때 여행 같이 갔던 사람. 당신 생각 안 나?” 집사람과 나는 ‘그것’, ‘거기’, ‘그 사람’이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그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이 말들 안 하려면 본의 아니게 묵언수행이 돼버린다. 해놓고 겸연쩍어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그 말 때문에 얘기 맥이 끊기기 일쑤다. 상기하려고 머뭇거리면 다들 그렇다 치고 얘기 계속하라고 다그친다. 인명백과사전이라던 박선생님이 사람 이름을 두고 쩔쩔 매는 걸 보고 다들 혀를 끌끌 찬 적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 내 경험담을 얘기했다. 아들네가 집에 온다는 전화를 받고 도착 시각에 맞추어 보쌈을 사러갔다. 그날도 그 식당은 만원사례였다. 들어서자 계산대의 아가씨가 미안한 표정으로 몇 명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좌석은 필요 없고 사가겠다는 뜻을 빨리 밝히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가씨는 다음 손님들을 응대하기 위해 눈으로 나의 대답을 재촉했다. “택배할 건데요.” “아, 포장하시겠다고요?^^” 그런데 그날의 압권은 한선생님의 경험담이었다. 친구 얘기라는데 아마도 본인 얘기일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모임에서 어떤 선생님 얘기가 나왔는데 그 ‘친구’, 문득 최근 들은 그 선생님의 소식이 생각나 끼어들었다. 그러나 ‘식물’이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내용이었는데도 선생님들은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선생님 아들이 사고로 야채 인간이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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