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김영국  (Homepage) 2017-03-23(목) 06:22:32, 2420

공지영, 유시민, 조국은 서로 공통점이 많은 좌파다. 반듯한 외모는 좌파의 투사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상불 이분들은 완전 ‘강남 스타일’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실력파들이다. 좌파는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편견을 불식하는 데 공헌을 했다. 그래서인지 우파들 중엔 이분들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언론에 불쑥불쑥 나올 때마다 그들은 애써 눈을 돌려버린다.  싸가지 없는 x이라고 혀를 찬다.(사정을 파악했는지 이번 대선에서는 조용하다.) 세 분의 책을 읽다가 80년대 운동권 얘기를 만났다. 많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분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소름이 송글송글 돋는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설마 그 정도였을까 반신반의하겠지만 이분들이 동지들의 얘기를 애써 왜곡하거나 과장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참으로 아슬아슬한 시대였다. 이분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그때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었을까. 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지상낙원으로 떠받들던 북한의 실상이 알려짐으로써 전향한 사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극소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A]는 공지영이 ‘문화혁명’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영어 담당 윤리주임)으로부터 배운 문화혁명에 대한 생각은 운동권 선배의 의식화에 의해 일거에 쓰레기가 된다. 마오쩌뚱은 영웅이 되고 선생님들은 거짓말쟁이로 전락한다. 대학 졸업 후 그때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겪은 사람들의 글과 말을 접한 후 또 반전이 일어난다. 백지 같은 후배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하다가 감옥으로 가기도 했던 그 선배들은 대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B]는 군에서 제대한 유시민이 운동권에 진입하려고 나름 애를 썼지만 결국 좌절하게 된 경위를 적은 글이다. 전반부는 유시민의 노력을 보여준다. 열독한 책들의 목록이 대단하지 않은가. 당시 운동권의 필독서였다는 얘기다. 고시 공부하듯 노력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한다. 유시민의 대답은 오늘 좌파들의 눈으로 모범답안이다. 탈락한 이유는 지상낙원인 김일성의 북한을 감히 남한과 나란히 놓은 것이다. 그런 허황된 꿈을 꾸던 당시의 운동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C]는 당시 대세였던 주사파에 맞섰던 조국, 진중권 등의 얘기다.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주도한 주체사상파가 서울대에서는 소수파였지만 전국적으로는 다수파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작 김영환은 커밍아웃을 하고 전향을 선언했지만 전국적으로 포진했던 그 다수파의 주체사상추종자들은 그대로 잠수를 타고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세상을 꿈꾸며 무슨 짓을 획책하고 있을까. 재학 중 북한을 다녀와 ‘통일의 꽃’으로 각광받던 임수경이 떠오른다. 제일야당의 국회의원이 되는 걸 보고 이제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탈북자들을 향해 ‘배신자’라고 호통을 쳤다. 취중 진담이었다. 한번 가진 신념이나 철학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꽃다운 나이에 가혹한 시련을 겪으며 다진 생각은 더욱 그러하리라. 폐쇄적 자기강화 메커니즘에 따라 더 공고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피가 뜨거운 사람들이고, 각 대학의 리더그룹에 속한 이들이다. 그들은 조용히 묻혀 자숙하며 살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옛 동지들과 서로 눈짓 주고받으며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혹은 언론계에서, 혹은 정계에서, 혹은 학교에서, 혹은 학원 일타강사가 되어, 혹은 법조계에서, 혹은 노동단체에서, 혹은 시민단체를 만들어, 혹은 연예계에서 또 혹은 재야에서 그들이 젊음을 바쳐 꿈꾸었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로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 [A] 공산주의에 대해서 의미가 다가왔던 건 80년대의 어느 복판에서 선배들의 지도로 중국혁명사를 공부할 때였다. 끊임없는 혁명을 위한 문화혁명, 이미 혁명 성공단계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영웅으로 비추어졌던 마오쩌뚱의 사업,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지식에 대해서, 서구의 모든 지식인들을 매료했던 마르크시즘을 이렇듯 천박하게 가르쳐주었던 우리들의 학교에 대해서, 우리들은 그럼으로써 절름발이 철학만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90년대가 밝아왔다. 나는 여러 중국인들이 쓴 책을 읽었고, 아직도 사회주의가 인류를 구원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 연변에 사는 우리 교포 작가의 글도 읽었다. 물론 이 영화 <패왕별희>를 만든 감독 첸 카이거의 글도 읽었다. 그들의 글에는 끊임없이 문화혁명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들의 글에서 문화혁명은 한결같이 아주 비참하고, 아주 야만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던 한 시대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가해졌던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영화 <패왕별희>에 그려지는 문화혁명을 보면서 나는 그걸 생각했다. ......... 어린 시절부터 20년 동안 지옥 같은 공산주의를 배운 우리들, ............ 스무 살이 지나가는 해부터 서른의 문턱에 닿을 때까지, 그 꽃 같은 나이에, 학교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던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얼치기였던 나는- 사회주의라는 이상에 모든 지옥과 반대되는 말들을 갖다 붙였다. 그것은 낙원이었고 구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이제 우리는 당사자인 중국인들의 입을 통해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공지영 <상처 없는 영혼> 2013 개정신판 149쪽 [B] 1983년 5월, 군에서 제대했을 때 나는 ‘학습 지진아’였다.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말고는 읽은 책이 별로 없었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뚱, 스탈린, 트로츠키 등 유럽과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책과 논문을 싸들고 문경새재에 있는 시골 마을에 들어가 석 달 동안 고시 공부하듯 읽었다. 모두 영어나 일본어 복사본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 하산해보니 세상은 더 멀리 나가있었다. 그런 논문은 모두 유행이 지났고 주체사상 학습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중략-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고 남한은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군사 독재국가다. 북한은 자주성이 높지만 남한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반쪽자리 주권국가다. 대한민국을 더 자주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북한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할 일이다.” 그렇게 말했다. 한 번 더 만나 대화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 다음 약속 장소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잘린’ 것이다. 내가 ‘구제 불가능한 자유주의자’로 보였던 모양이다.    -유시민 <나의 한국 현대사> 242쪽 [C]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인 1986년 말쯤으로 기억한다. ‘강철서신’ 시리즈가 대학가에 유포됐다.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첫 번째 글 이후 ‘수령론’, ‘품성론’ 등의 서신이 이어졌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주체사상’을 민주화운동의 사상으로 받아들이자는 이 서신은 서울대 법대 동기였던 김영환 군이 작성 유포한 것이었다. 이 서신을 놓고 학생운동 전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서울대 학생운동권은 ‘비주사파’가 다수파였지만, 전국적으로는 ‘주사파’가 다수파가 됐다. 이후 김영환 군은 1989년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돌아와 반제청년동맹, 민혁당 등의 비합법 활동을 했음이 밝혀졌다. ‘강철서신’을 접하자마자 나는 이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억압적이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체제였고, 이는 우리가 바라던 대안 사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운동권은 ‘주사파’로 경도되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주체사상이야말로 한반도 전체의 진보를 위한 정치사상이며, 조선노동당이 한반도 전체에서 유일하게 진보를 향도하는 정당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또는 ‘미 제국주의’에 오염된 사고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싸워야겠다고 판단했다. 뜻이 맞는 대학원생 친구들과 함께 주체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1989년 ‘주체사상 비판’이란 책을 출간했다. 당시 같이 작업했던 사람으로는  이진경, 진중권 등이 있다. 책 줄간 이후 ‘주사파’ 활동가들이 이 책에 대해 분노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국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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