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와 신영복 김영국  (Homepage) 2017-02-21(화) 06:06:02, 2689

지난 2월 8일은 ‘2.8 독립선언’ 98주년 기념일이었다. 1919년 이날 일본 유학생 600여 명은 도쿄 한복판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일본이 기민하게 사건을 덮는 바람에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피 끓는 조선 청년들의 기백을 보여주고 기미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언서와 결의문을 20대의 이광수가 썼다. 그리고 그는 이 선언문을 중국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그 열혈 청년 이광수가 결국 친일파가 되어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인간 이광수만 매장된 것이 아니라 그 선언서도 그의 문학작품도 함께 매장되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풍운의 천재 이광수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다. 작년에 타계한 신영복을 생각해본다. 그는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2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통혁당은 북한 노동당의 재남 지하당으로서 적화통일을 기도하던 집단이었다. 열혈 청년 신영복은 대학 강단에서 ‘은밀하고 위대하게’ 이들의 활동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석방 후 대학 교수도 하고 저작활동도 했다. 그냥 그럭저력 연명한 것이 아니라 존경과 숭앙의 대상으로 빛나게 살았다. 그의 저서는 모두 묵직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나는 그의 <강의>를 읽으며 이분은 이광수에 버금가는 천재임에 틀림없다고 혼자 단정했다. 경제를 전공한 분이 언제 어떻게 공부하여 동양고전을 이렇게 거침없이 번역하고 도저하게 해설할 수 있단 말인가 재삼 탄복하였다. 마지막 저서인 <담론>은 이분의 지식의 폭과 생각의 깊이가 범인으로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경지임을 깨닫게 했다. 오랜 유배 생활로 오히려 빛난 정약용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 제목이 그대로 소주 이름으로 전용되기도 하고 그 라벨 글씨를 써주어 받은 거액을  재직 대학에 기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정당의 이름에도 그의 책 제목이 원용되었다. 그의 영결식장에 찾아온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정치인은 그를 “역사의 스승이자 시대의 지성”으로 추앙하기도 했다. 그의 긴 수감 생활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민주화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반국가 단체에 가담하여 대한민국을 북한 정권에 넘겨주려 활동한, 말하자면 간첩이었다. 그를 포섭한 김질락(1969 처형)은 그의 유저에서 신영복의 활동상황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국민의 스승’ 자리에까지 추대되었다. 그런데 이광수는 사면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주옥 같은 작품들마저 햇빛을 볼 기미가 보아지 않는다. 그를 빼놓고는 근대문학사를 제대로 서술할 수 없음에도 사회분위기가 고집불통이다. 나라를 북한에게 넘기려던 사람에게는 저렇게 관대하고 나라를 뺏어간 일본 쪽에 섰던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가혹한가. 한쪽은 ‘반국가’이고 한쪽은 ‘반민족’이기 때문인가. 민족이 국가보다 상위개념인가. 아니 민족이란 개념의 실체가 있기는 있는 건가. 신영복은 양심범인데 이광수는 사심범인가. 이광수도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1919년 2.8 독립선언부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까지 근 20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고. 1939년(조선문인협회 회장)부터 광복까지 6년 동안 친일활동을 했다. 그의 변절도 그의 양심에 따른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풍미했던 사회진화론은 국가와 민족도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다고 주장했다. 30년대 후반 국력의 엄청난 격차, 온통 일본 편인 세계정세 등으로 미루어 조선의 독립은 무망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의미한 독립운동으로 피해만 키우느니 하루 빨리 일본에 동화하여 더 나은 대접을 받게 하는 것이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이광수뿐이었겠는가. 신영복의 오판도 오십보백보다. 경제학자인 그는, 외세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는 강대국의 수탈로 망할 수밖에 없는 반면, 북한이 가고 있는 주체적 사회주의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의 생각 역시 참으로 황당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복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듯, 이광수나 최남선, 2.8독립선언서와 기미독립선언서,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이제 다시 들여다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때를 살아보지 않은 오늘의 우리가 너무 엄격한 잣대로 그때의 그분들을 재단하고 처단하며 스스로 잘난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쓸쓸했던 2월 8일,  3.1절을 앞두고 발칙한 생각을 해보았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민망 교육의 추억8-반짝이
다음글 :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나누고 싶은 글2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