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뒷간 최영도  (Homepage) 2023-02-28(화) 07:10:26, 113750

지난 해 여름,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시멘트 바닥이지만 여유로운 마당이 생기고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한 새소리에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대문 앞 골목길에 고양이가 똥을 누고 가고 집 안팎으로 바퀴벌레가 보이곤 했다. 매일 아침 골목길 청소와 집 안팎 소독이 일과가 되었다. 한 두 달 쯤 지나자 골목길도 깨끗해지고 각 종 벌레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마당 한 쪽에 텃밭을 한고랑 만들어 국화와 과꽃을 심어 보았다. 꽃 진 자리에 겨울초와 상추 씨앗을 뿌려보았다. 골목길에 똥을 누던 고양이들이 좋은 화장실이 생겼다는 듯 텃밭에 똥을 누고 흙으로 살짝 살짝 덮어두고 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검색창을 뒤적거려 커피 찌꺼기도 뿌려보고 마늘을 놓아둬 보기도 했지만 고양이를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고양이를 이길 수 없었듯이 고양이도 겨울초를 이기진 못한 것 같다.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똥을 누고 갔지만 새싹이 움트고 자라는 것을 말리지는 못했는지 겨울초가 빽빽하게 들어차자 이제 다른 곳을 찾아 또 헤매고 다니는 모양이다. 어제는 웃자란 겨울초를 솎아 내어 겨울초 거섶 국수를 점심으로 즐겼다. 입안에 봄내음이 번져갈 때 쯤 ‘이런 게 행복이란 걸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행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혼자 찾아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느끼려니 자연의 똥과 자연의 벌레들이 같이 묻어온다. 아름다움이나 여유로움만 차지하려는 욕심은 같이 묻어온 다른 자연 때문에 행복보다는 좌절감으로 더 괴로워 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 곁에 묻어온 똥을 배척하고 포기하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이 행복을 맞이하는 올바른 태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나물의 풋풋한 내음과 더불어 고양이 똥에 대한 생각까지 같이 떠올리며 국수를 먹었는데도 국수 맛이 참 좋았다! 정일근님의 시도 한 수 곁들여 먹었다! ~~~~~~~~~~~~~~~~~~~~~~~~~~~~~~~~~~~~~~~~~~~~~~~~~~~~~~~~~~~~~~~~~ 자연의 뒷간 정일근 오래 비어 있던 집에 세 들어 마당에 자랑처럼 푸른 잔디 가꾸며 산다 난생처음 가져본 잔디 마당인데 자고 나면 잔디밭은 개똥밭이다 똥 누는 개에게 고함치며 화를 내봐도 개 몽둥이 들고 대문 앞을 지켜봐도 동네 멀리서부터 당당한 걸음으로 내 잔디 마당으로 똥 누러 오는 저 개들을 나는 이길 수 없다 하늘 나는 날개를 가졌기에 산비둘기는 자유롭게 똥 누고 산다 지붕에 똥 누고 신발에 똥 누고 빨래에 똥 누고 장독에 똥 누고 어떤 날은 내 머리 위로 물똥 누고 휙휙 날아가버린다 자연의 땅에 말뚝 박아 경계 긋고 집 세우고 새 번지 만들어 사람 이름 새긴 문패 달고 살지만 오래전부터 그곳엔 뒷간이 있었다 들쥐가 땅 파고 똥 누고 가는 도둑고양이가 몰래 똥 주고 가는 자연의 뒷간에 사람이 살고 있다 나라에 주거세 내면서 살고 있다 ☞ ‘영도표 국수’ 조리법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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