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를 건넬 용기 윤재환  (Homepage) 2025-07-05(토) 06:33:44, 10945

“어른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야.” 작년 이맘때, 지인이 책 한 권을 건네며 해준 말에서 ‘그림책’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콕 박혔다. 그림책이라니, 어린 시절 이후로 잊고 지낸 단어였다. 선물 받은 그림책을 펼쳐보았다. 넓은 여백을 보는 순간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 한 권씩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과 글을 훑기만 했다. 그러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에 담긴 깊이와 울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심오한 글, 아기자기하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은 마치 흰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림책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수록 궁금해졌다. ‘어떻게 읽어야 그 안에 담긴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혼자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 그림책 수업을 찾아 듣고 매달 두 번씩 만나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며 나는 그림책 독서법을 성실히 탐구했다. 두께는 얇지만 삶의 지혜와 따뜻한 위로가 담긴 책을 하루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여러 권을 빌려와 매일 밤 한 권씩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즐기다보니 나만의 방식이 생겼다. 그림책을 재밌게 읽는 나만의 순서는 이러하다. 먼저 표지와 면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작가 소개문을 꼼꼼히 읽은 뒤에 본문으로 넘어간다.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그림과 글을 최대한 천천히 감상하며 한 장씩 넘기면 이야기에 저절로 빠져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는 곧바로 책을 덮지 않고 면지와 뒤표지까지 살피며 여운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까지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나면 나만의 보물을 또 하나 간직해둔 듯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설렐 만한 일이 별로 없는 일상이 조금씩 빛을 내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이별이 찾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수학 공부방에 다니던 아이의 학부모로부터 갑작스럽게 공부방을 그만두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이와 오래 쌓아왔던 관계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유를 묻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중이었다. 섭섭함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도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날 밤에도 그림책을 펼쳤다. 사랑스러운 삽화들이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림책은 마지막 장을 넘겼다고 해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은 오래갔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헤어짐이 끝이 아닐 수 있음을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일주일 후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이가 공부방에 두고 간 문제집을 문 앞에 두면 가지러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마치 그림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아이와 잠깐이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요?’ 다행히 학부모님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아이의 앞날을 응원하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그동안 소중히 여겼던 관계의 마지막 장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앞으로도 나는 끝인사를 청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으며 얻은 지혜를 떠올릴 것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대한 관계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름다운 마침표가 찍힌다.’ ~ 정현경님의 글, 남편과 둘이 살고 있는 40대 주부이자 공부방 선생님입니다. 수학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점차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얻는 동심을 그림책 읽기로 키워나갑니다. 최근에 코비 야마다 작가의 그림책 《나의 아기 오리에게》를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 출처 ☞ ‘월간 샘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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